매일신문

일월산(3)선녀골 영험 현장

잘 생겼다. 선녀골. 골짝은 그 곡선이 무르면서도 완만했다. 그냥 푸짐했다. 웬만한 비에도 움푹 패이고 물살 콸콸 거리는 여느 계곡과는 달랐다. 지금은 워낙 날이 가물어서 그렇지 그래도 졸졸거리는 물소리는 그것 자체가 주문(呪文)이었다. 비로소 선녀암이 골짝 초입에 기를 쓰고 자리하는 이유를 알것 같다.

선녀골의 핵은 무엇보다 선녀탕이다. 아름답고도 알맞은 크기의 작은 소. 이 골짝 어디쯤 있을까 궁금히 여기며 선녀골을 오르기 시작하면 싱겁게도 선녀탕은 바로 거기서 만날 수 있다. 너무 쉽게 만날 수 있는게 오히려 극적이다. 으레 한참 골짝을 올라가야 있을것이란 선입견을 여지없이 뭉개버린다. 골짝 바닥을 찰싹 달라 붙어 흐르는 물살이 두어번 휘 감아 돌아 떨어지는 곳에 작은 소 두개가 서너 걸음 간격을 두고 작은 폭포를 하나씩 끼고 소곤거리듯 붙어 있다.

어느것이 선녀탕이냐로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결국 아랫것으로 판명이 났다. 윗것은 탕으로 떨어지는 물살이 아랫것 보다 세다. 여기에 비해 선녀탕은 훨씬 부드럽고 안온하다. 윗물을 받아들이는 낌새도 그저 조용하다. 규모 또한 잠깐 지아비의 눈치를 재주껏 살핀 후 계곡으로 한달음에 목욕나온 아낙의 펑퍼짐한 엉덩이와 흡사하다.

손을 담가 본다. 선녀들이 옷깃을 너훌거리며 목욕 하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손 끝에 뭔가 만져질것만 같다. 선녀? 아니다. 그것은 차가운 물의 냉기였다. 에는 듯이 손끝을 타고 가슴까지 다가 오는 냉기였다. 시리기까지 하다. 오늘 새벽에도 여기서 목욕 했다는 기도객 임병선(52·여·경남 마산시 월영동)씨가 멀리서 우리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붙인다.

"해마다 이맘때쯤 선녀골을 찾아요. 간혹 한겨울에도 찾을 때가 있지만 철을 가리지 않고 선녀골에서 기도 할 때는 반드시 선녀탕에서 목욕해요. 겨울에는 눈 속에서 얼음을 깨고 전신목욕을 합니다. 그런후 기도를 해야 일월산신의 영험을 몸과 마음으로 받을 수 있지요"

놀랍다. 영험이 무엇이길래 얼음까지 깨가며 차가운 물속에서 목욕한단 말인가. 일월산신 때문일까. 일월(日月). 해와 달이 만나면 무엇일까. 명(明)이다. 그래서 무당들은 예로부터 명도(明圖)을 귀히 여겨왔다. 명두(明斗)라고도 한다. 명도는 무당이 수호신으로 위하는 청동거울. 둥글 넙쩍한 것으로 뒤에는 해와 달과 북두칠성을 새겨 넣었다. 웬만한 무당은 이걸 지니지 못한다. 그야말로 큰 무당만 이걸 지닐 수가 있었다.

굿거리가 있을 때 큰 무당을 초청하지만 부득이 초청에 응할 수가 없으면 대신 명도를 보낸다. 자신의 징표로서 굿을 해도 좋다는 일종의 허락인 셈이다. 물론 일월산과는 무관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월(日月)이 주는 의미가 무속의 이런 습속에 고스란히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만은 결코 떨칠 수가 없다.

선녀탕을 지나 골짝을 오르자 영험의 현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곡과 잇닿은 곳에 수없이 흩어져 쌓아둔 기도처. 조약돌 보다는 훨씬 굵은 넙쩍 돌들이 민초들의 애환처럼 쌓여 있다. 무릎을 꿇으면 딱 알맞을 높이다. 농사철 시골 곡식마당 한켠에서 누른국수 삶기위해 만든 노천 아궁이 모양이다. 기도하는 이들의 개인 제단인 셈이다.

'진주강씨 기도처'. 비록 돌무더기 위쪽을 시멘트로 칠해 그 위에다 작은 글이지만 글씨 속에는 애틋하고 정갈한 그 기도처 주인의 절실한 마음 한 구석을 읽을 수 있을것만 같다. 이런 돌무더기 개인 기도처가 선녀골에는 많다. 어떤것에는 '살려 주소서'라는 섬뜩한 문구도 적혀 있다. 일순 소름이 돋기도 하지만 이 기도처 주인 또한 우리와 별반 다를바 없는 민초라는데 이르면 차라리 그 소원이 빨리 이뤄지기를 누구나 빌어 주고 싶을 것이다.

언제부터 이런 기도처를 사람들은 선녀골에다 만들기 시작했을까. 흉칙스런 용화제련소를 지날 때 만난 할아버지 두 분 이야기로는 200년도 더 됐다는 것이다. 질병이 들고 가뭄과 홍수로 기근이 들고, 있는 자들의 횡포가 극에 달하면 민초들은 새 세상을 염원하며 이곳 골짝에다 돌을 쌓아 제각각 기도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왜 하필 200년 일까. 물론 근거는 있을 턱이 없다. 할아버지들은 당장 생각난것이 200이라는 숫자였을 것이다. 먼 세월, 까마득한 세월을 이렇게 표현한것 뿐이다. 그만큼 많은 세월속에서 민초들이 질긴 생명력, 아니 결코 끊어질 수 없는 생명력을 이어 왔다는 말을 대신했을 따름이다. 그래놓고 할아버지들은 어허야며 웃으셨다.

4, 5년 전이다. 내로라하는 풍수사들 너댓이 이 기도처들을 살피러 왔다. 하도 영험이 좋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손에는 제각기 구리로 만든 간이 수맥탐사기를 들고서. 놀라운것은 기도처 밑으로는 수맥이 흐르지 않는다는 점을 풍수사들은 발견했다. 계곡 물길 사이에 만들어진 기도처인데도 수맥이 흐르지 않다니. 그들은 놀라워 했다. 기도객들이 수맥을 조사해 기도처를 만들지 않았는데도 하나같이 수맥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녕 일월산신의 영기가 기도객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

계곡 한 켠 솟은 절벽 아래 쪽에 암굴 하나가 있다. 서서 들어 갈 수는 없지만 앉아서는 편안히 들어 갈 수 있다. 길이 5m 남짓. 어떤이의 지극정성이 이 동굴기도처를 만들었을까. 한 참을 타고 있는 촛불들이 밝다. 천정 주위의 그을음이 엄청난 세월을 말해 주고 있다. 5~10명이 한꺼번에 제각기 기도를 드리며 저마다의 신을 만날때도 있다니 그럴때는 과연 장관일 것이다. 계곡 물길 사이의 돌무더기 기도처가 개인용이라면 이 암굴은 집단적 기도처인 셈이다.

지금 일월산은 나무가 우거진것도 아니다. 신비한 돌들과 바위가 엉킨 곳도 아니다. 반반한 반석 하나 없다. 한 낮 땡볕이 그대로 기도하는 이의 등짝을 후려 갈기는 곳이다. 그런대도 기도객들은 끊이지 않는다. 무엇때문에? 암굴을 떠나 5분여를 오르면 100여평은 족히 될 너른 평지가 나온다. 낙엽이 발목까지 차 올라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전국의 기도객들이 합숙하는 장소다. 원래 없었지만 몇년전부터 기도객들 스스로가 수천번을 오르내리며 흙등짐을 져 날라 조성한 곳이다.

머리를 쳐 올려다 보니 오늘 따라 일월산은 안개가 유난히 짙다. 벌써 여름 안개. 정상의 일자봉과 월자봉이 안개속에서 숨박꼭질이 한창이다. 이런것이 신선놀음. 일월산에는 무슨 조화가 이리도 시시각각 일까. 얄궂다. 내친김에 황씨부인을 모신 사당으로 가기로 했다. 갑자기 일월산이 가팔라진다. 계곡 끄트머리쯤 함박꽃이 하얀 자태로 흐드러져 있다. 오솔길 옆 네갈래로 갈라 졌다 다시 하나로 만나는 길목에 서 있는 산벗나무에도 어느새 영험이 베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鄭敬久기자 jkgoo@imaeil.com, 權東純기자 pinoky@imaeil.com

金振萬기자 factk@imaeil.com , 金敬燉기자 kdon@imaeil.com

嚴在珍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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