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료개혁 무엇이 문제인가(3)-거꾸로 가는 의료전달 체제

직장인 박철우(46)씨에겐 요즘 짜증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의사들의 진료 중단, 폐업 같은 소리가 다시 등장했기 때문. 병원과 의사는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 있는 것일텐데 어째서 소비자는 간곳 없고 정부와 의사들이 물고 뜯는가? 그럼 시민들은 뭔가? 의사와 정부가 서로 차 던지는 공에 불과한 것인가? 분통이 터진다.

"옛날에는 고생 끝 행복 시작, 요즘엔 고생 끝 산넘어 산"

요즘 종합병원 인턴.레지던트들 사이에 유행하는 우스개다. 몇년 전만 해도 고생스런 전문의 수련과정만 마치고 개업하면 고수익이 보장됐으나,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개업은 곧 생존을 위한 투쟁의 시작'이란 긴장감이 젊은 의사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의사에게 좋았던 시절이 갔다는 얘기.

그 때문에 이번 의료계의 집단 파업에서도 가장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개원을 눈앞에 둔 전공의이다. 의약분업이 되고 나면, 위중한 환자는 종합병원에 갈 것이고, 그렇지 않은 환자들은 약국과 병원을 오가는 불편을 감수하는 대신 약국에서 약을 살 것이다. 결국 동네의원만 설자리를 잃는다는 게 이들의 우려.

우리 의료에는 의약분업 말고도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가 많다. 동네 의원과 종합병원의 역할이 구분돼 있지 않다는 것. 약물 오남용의 큰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이 역할 구분의 모호성에 있다는 분석이 이미 나와 있다.

우리나라 외래환자의 45%는 병원급 이상의 큰 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고 있다. 1977년 '부분 의료보험'이 도입된 후 정부의 저수가 정책으로 환자들은 가벼운 질병만 있어도 동네 병원보다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종합병원과 동네의원이 입원-외래로 담당 기능이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환자와 같은 질병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 경쟁 상대는 병원만이 아니다. 약국도 동네의원의 유력한 경쟁자다. 그래서 병의원과 약국 모두 한번 온 환자를 잡아 둘 목적으로 단판 승부식으로 약을 강하게 쓰게 된다는 것이다.

환자경쟁은 또 동네의원과 종합병원을 최첨단 의료장비 경쟁으로 몰아 넣었다. 의료보험 수가로는 타산이 맞지 않으니 많은 수가가 보장되거나 아예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가 첨단장치를 위주로 한 진료가 늘고 있는 것이다. 동네의원들은 과거 종합병원에나 있었던 수억원 짜리 라식수술기, 레이저치료기, 체외충격파 쇄석기 등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의료장비에 관한한 우리나라는 미국에 뒤지지 않는 의료 선진국인 셈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잉진료로 의료비 부담은 더 많아지고, 국가까지 의료장비 과다로 낭비 피해가 만만찮다.

의료계에선 이번 기회에 완전한 의약분업 뿐만 아니라 동네 병의원을 살릴 수 있는 개혁을 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동네 병의원을 거치지 않고는 대학병원을 이용하지 못하게 법으로 못을 박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북대 의대 송정흡교수(산업의학과)는 동네의원도 살리고 대학병원도 의학 연구라는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미국과 캐나다에서 시행하고 있는 어텐딩(attending)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시스템은 동네의원에 갔던 환자에게 수술이 필요할 경우, 그 의사가 환자를 데리고 종합병원에 가서 그곳 스태프들의 지원을 받아 수술을 하고, 어느 정도 회복되면 다시 동네의원으로 데려가는 방식. 이렇게 하면 개원의는 전공의 시절 닦은 의술을 활용할 수 있고 의료 사고 위험도 줄일 수 있다. 또 종합병원 수련의들도 다양한 수술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며, 환자는 무슨 병이든 동네병원만 찾으면 되는게 이 시스템의 장점이라고 송 교수는 설명했다.

약물 오남용을 줄이기 위해 의약분업이 꼭 시행돼야 한다는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개혁이 동네의원을 살릴 수 있는 의료환경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의료개혁은 절반의 성공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그만큼 공감을 얻고 있다.

李鍾均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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