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료개혁 무엇이 문제인가

직장인 박철우(46)씨에겐 요즘 짜증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의사들의 진료중단, 폐업같은 소리가 다시 등장했기 때문. 병원과 의사는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 있는 것일텐데 어째서 소비자는 간곳 없고 정부와 의사들이 물고 뜯는가? 그럼 시민들은 뭔가? 의사와 정부가 서로 차 던지는 공에 불과한 것인가? 분통이 터진다.

"내 돈 주고 약도 마음대로 못사먹게 한단 말이요? 세상에 무슨 그런 법이 있어! 정부에 할 일이 그렇게 없는 모양이지? 약을 사 먹든, 병원에서 진찰을 받든 그건 우리의 자유인데 분업은 무슨 분업!".

의사 폐.파업 이틀째이던 21일 밤. 대구시 남산동에 산다는 한 40대 독자는 매일신문사로 전화를 걸어 "정부가 왜 쓸데 없이 의약분업 같은 것 하자고 해 의사들을 자극하고,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느냐"고 항의했다.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도입된지 만 100년. 의료 이용의 관행을 뿌리부터 바꿔 놓을 의약분업 실시일이 열흘도 채 남지 않았지만, 왜 그걸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다.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환자는 불편해진다. 지금과 달리 의사에게서 진찰과 처방전을 받아 들고 약국으로 가 약을 지어야 한다. "아픈 사람에게 무슨 고생 시키느냐"고 생각하기 십상.

그러나 이렇듯 불편하게 하는 첫째 목적은 약의 오남용을 줄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생제.스테로이드제 등 잘못 썼을 때 부작용이 심한 약을 오히려 '만병 통치약'으로 아는 경향이 있다. 또 "약국에 가면 약을 주고 병원에 가면 주사를 준다"는 생각을 아직까지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약물 오남용을 막아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기본적 임무에 속한다.

더욱이 약을 오남용하면 '내성'이라는 것이 생긴다. 이것이 생긴 뒤엔 똑같은 약효를 얻으려 해도 전 보다 더 많은 약을 먹어야 한다. 그러다가도 안되면 아예 훨씬 더 비싼 또 다른 고단위 약으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면서 '내성'의 강도는 점점 높아진다. 항생제를 써도 균이 죽지 않을 확률을 나타내는 계수가 '페니실린 내성률'이다. 우리는 이것이 70%를 넘었다. 세계 최고. '항생제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이 필요 보다 훨씬 더 많은 의료비를 부담해야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막자는 것이 의약분업 실시의 두번째 목적이다.

또한 약품 오남용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의 문제는 개인의 것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의료보험 재정을 결딴 내, 다른 사람의 의보료 부담까지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런데도 그냥 놔뒀다간 대한민국의 유일하다시피 한 사회보장 장치인 의료보험 제도 조차 안전하기 힘들 것이다.

의약분업의 세번째 장점은 환자의 알권리가 충족되고 의약 서비스 수준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의사들은 진료 내용을 환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병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의사가 독점해 왔다. 그래서 의사의 처방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의약분업이 시행되면 처방전이 공개된다. 약을 처방하는 의사도 누가 자신의 처방전을 검토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한 꼭 필요한 약만을 적정 용량으로 조심스럽게 처방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진료 내용이 그만큼 더 충실해지는 것이다.

처방약의 품질이 좋아지는 것 역시 의약분업으로 환자들이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혜택이다. 지금까지는 어떤 종류의 약을 처방하는지 환자들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약이라고 다 같은 약이 아니다. 종류에 따라 효능도 차이가 난다.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약효 보다는 판매 이윤 많은 약을 선택, 환자에겐 부담을 늘리면서도 자신은 영업수지를 맞추기도 했다. 그러나 의약분업이 되면 어떤 약을 처방했는지 공개되기 때문에, 의사들은 더 많은 환자를 확보하기 위해 좋은 약을 쓰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약분업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되는 의료 개혁정책이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다. 의약분업은 '입에 쓴 약'이다. 영국.미국.캐나다.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오래 전부터 의약분업을 실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李鍾均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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