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을 마치고 전선으로 향하는 병사들에게 동백꽃 한송이를 달아주며 건투를 빌었지요. '전우여 잘자라'를 함께 부르며 민족의 비극과 시대의 아픔을 달랬습니다" '군번없는 군인, 계급없는 교관'. 한국전쟁 당시 국토의 남단 제주도에서 군예술공연대(군예대) 대원으로 활동했던 원로가수 고화성씨(74.본명 裵敬喜.한국연예협회 대구가수분과위 상임고문). 그는 지역 유일의 종군 연예인이자 국내에 몇 남지않은 6.25 참전 군예대원이다.
고씨는 6.25를 증언하는 가락으로 당시 장병들의 애환을 대변했던 가요 '전우야 잘자라'의 탄생지가 바로 당시 제주도 제1훈련소라고 증언한다. 박시춘 작곡.유호 작사의 이 노래가 입소한 훈련병들에게 가르치는 첫 군가였다는 것.
밤낮없는 공연과 교육, 대본 변경과 새군가 연습 등으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는 그는 "너무 힘든 나머지 차라리 총을 들고 전선으로 나가고 싶을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전쟁이 일어난 이듬해 2월 제주도 군예대원으로 징집돼 온 연예인들은 100여명. 작곡가 고 박시춘(군예대 대장)과 가수 남인수(부대장)를 비롯, 코미디언 구봉서.가수 신카나리아씨 등 이름깨나 있는 전국의 연예인들이 다 모였다.
"포연은 멎고 사람도 가고 없지만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 주던 노래는 남았습니다" 당시 함께 고생했던 종군 연예인들도 세월따라 유명을 달리하고 이제는 몇 남지 않았다는 고씨.
50년 여름 대구에서 첫 취입, 전시의 장병들과 피란민들의 심금을 울린 자신의 히트곡 '꽃피는 진주땅'(이병주 작곡.손노원 작사)을 흥얼거리며 옛 생각에 잠긴다. '호들기 꺾어부는 꼴망태 저목동아…. 호박넝쿨 우거진 그리운 내집에 태극기가 날리더냐'.
휴전후 서울로 가자던 동료들의 권유에도 고향인 대구에 정착한 고씨에겐 통일이 되면 북녘땅 무대 위에서 꼭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다. '꿈에 본 내고향'. 그것이 타향에서 전사한 남북 장병들의 넋과 실향민들의 한을 달래고 싶은 칠순 종군 가수의 마지막 염원이다.
趙珦來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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