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환자절규 안들리나"

대구시내 종합병원들의 응급실 문이 닫혀 버렸다. 중소병원으로는 감당 못하는 대형 수술과 처치, 그걸 맡아줄 곳이 이젠 어디에도 없다. 아찔한 상황이 계속되고 순간순간이 두렵다.

23일 오전 8시 경북대병원. 한 할머니의 절규가 병동을 휘감았다. 다섯살 바기 손녀가 사흘전 교통사고를 당해 상주 적십자병원을 거쳐 22일 이 병원까지 왔으나 입원을 거부당했다. "부기가 빠져야 수술할 수 있다"며 의사가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달래자 할머니가 되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자식도 없습니까?". 수술은 그렇다 치더라도 되돌아 가지는 못하겠다며 육아실 귀퉁이에 아이를 안고서 버티고 있었다.

임신 7개월째인 임신부 이재희(36.경산)씨는 양수가 터진 상황인데도 4시간 동안 여섯곳의 병원을 전전하고서야 간신히 영남대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상황이 급박해진 것은 이날 오전 8시쯤. 평소 다니던 병원으로 갔으나 진료가 되지 않았고, 경산동산병원으로 옮겨져서는 "미숙아 분만시설이 없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는 권유만 받았다. 오전 10시 넘어 대구 파티마병원으로 갔지만 파업 중이라는 이유로 접수 조차 해보지 못했다. 허둥지둥 대구의료원까지 뛰어서는 미숙아 분만에 필요한 산소호흡기 여분이 없다고 해서 또 헛걸음이 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낮 12시10분쯤 영남대병원을 찾았다가는 "인큐베이터가 다 차서 안 된다"고 거절당했으며, 이어 가톨릭병원 쪽으로 헤맸지만 역시 거절 당했다. 다시 영남대병원으로 되돌아 와 겨우 자리를 차지한 뒤, 남편은 "만일 아이나 산모에 이상이 생기면 곧바로 고소할 것"이라며 격분했다.

한 간질환자는 병원에서 처방전은 받았으나 약국 일곱군데를 거치고도 약을 구하지 못했다. 영남대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약을 타먹는 김모(33.대구 비산동)씨가 약을 타러 간 것은 23일. 그러나 응급실 폐쇄 소식에 환자들이 폭주해 약타기를 포기하고 약국을 찾아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섯군데 약국의 약사들은 "그런 약도 있느냐"고 되물었다.

겨우 ㄷ약국에서 약을 찾아냈지만, 이번엔 또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에선 한달치(84알)를 1만8천원에 타 왔으나, 약국에선 500알(한통) 단위로만 팔고, 값으로 20만원을 요구한 것. 결국 김씨는 오후 1시가 넘어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와 싸움싸움 끝에 약을 타 갔다.

대형병원 상황이 심각하다. 응급실에도 의사가 있긴 하지만, 많아야 2, 3명이 전부. 특급 응급환자 외에는 거의 모든 환자를 다 되돌려 보낸다. 어제 낮 문을 닫은 이후 24일 아침까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환자래야 경북대병원 15명, 영남대병원 3명, 동산병원 5명 정도씩에 불과했다. 다른 환자들은 중소병원으로 보내져, 곽병원 등의 응급실이 엄청나게 붐볐다. 즉각적으로 대형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지금 갈 곳이 아무데도 없다. 내일, 일요일이 또 두렵다.

임시취재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