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이 성성한 노병들이 옛 고지를 찾았다. 6.25 50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칠곡군 석적면 망정리 마을 앞산 328 고지. 50년전 격전지에 국군 1사단 15연대 1대대 3중대원들이 다시 모였다.
경기도 고양에서 새벽차로 내려온 중대장은 석달전의 위장 수술로 체중이 10kg이나 빠진 상태였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소대장도 충남 공주에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칠순을 넘긴 노병들은 그러나 묵묵히 6월의 산을 올랐다. 앞서간 전우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국방색 전투복 차림에 군화까지 신었다.
3중대가 아직도 이처럼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이유가 있다. 3중대는 반세기 세월이 흘렀어도 병사부터 사단장에 이르는 당시 상급부대 지휘관들이 고스란히 생존해 있는 유일한 부대이다.
50년만에 중대원들이 옛 고지에 모인 것도 국군 창설이래 초유의 일이다. 소식을 접한 백선엽 당시 사단장(79.전 육군참모총장)과 최영희 연대장(78.전국방부장관)도 옛 부하 장병들의 무운장구를 비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죽어도 못잊을 328 고지. 이게 마지막 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왔다. "중대장님, 여기 중대 OP가 있던 자리…" 유해발굴 작업으로 군데군데 얕은 구덩이가 팬 산등성이. 참혹했던 옛 전장터에 선 노병들은 깊은 감회에 젖었다.
낙동강 전선 최대의 격전지. 1950년 8월 13일부터 보름간 무려 15차례나 고지 주인이 뒤바뀌었던 곳. 다부동전투사도 여기 피의 능선을 시산혈하(屍山血河)로 적었다.
고지 주변을 한참이나 서성대더니 중대장이 소리쳤다. "여기, 여기있다 " 총탄 흔적이 점점이 박힌 바윗돌. 그는 이 바위 뒤에 엎드려 총격전을 벌였고, 육탄 공격을 해오는 인민군 병사와 뒤엉켜 싸우다 다리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고 했다.
그때 가물거리는 의식속에 선연히 떠오르던 어머니와 해방둥이 누이동생의 모습. 고향이 평북 용천인 중대장은 아직도 하나밖에 없는 누이의 생사조차 알길이 없다. 고지 남쪽 가장자리를 가리키던 분대장도 가슴에 맺힌 얘기를 꺼내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마을에서 같이 입대한 전우가 전사한 곳입니다. 그친구 어머니가, 만날 때마다 '우리 용삼이는 왜 안오느냐'고 울더니…결국 실성하고 말았어요" 이곳에서 살아 남은게 꿈만 같다는 선임하사는 고통없이 죽는게 오로지 소원이었다고 진저리를 쳤다.
"포탄에 맞은 이 나무도 이제 나처럼 늙고 병들었구먼…" 포연이 멎은지 반세기.50년간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온 이들에겐 조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6.15 남북 공동선언으로 민족 화해의 시대 개막을 바라보는 노병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역사는 우리를 어떻게 기록할까요"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구국전선에서 피흘려 싸웠던 충정만은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며 노병들은 고지를 내려왔다.
趙珦來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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