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온 산하가 파괴와 살륙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돈을 겪었던 한국전쟁. 그러나 피난지 대구는 포성이 가까이 들리는 가운데에서도 아름다운 소리의 울림이 그치지 않은 곳이었다.
피난민들과 더불어 많은 음악인들이 전쟁을 피해 남하, 이곳 대구에서 전쟁속에서도 꺼질 줄 몰랐던 음악의 열정을 꽃피웠기 때문.
이때문에 대구·경북지역의 음악인들은 한국전쟁이 이 땅의 모든 것을 처참하게 파괴하는 가운데서도 향토는 피난지라는 점 때문에 음악분야의 경우 오히려 활성화의 계기가 된 측면도 있다고 되돌아본다.
전쟁기간 중 대구에서의 음악활동은 군부대가 중심이 돼 이루어졌다. 국방부 정훈국이 대구에 주둔하게 되면서 군가보급, 군인 사기앙양 등을 위해 종군 문인단이 결성됐던 것.
이중 음악분야에서는 후일 대구오페라단 단장을 지냈던 이점희씨를 비롯, 이상필·김진균·한창희·김병곤·이기홍·백년설·안종배 등이 이 단체에 가입해 있었다. 또 국방부 군악대 소속 정훈합창단을 비롯 종군 음악단체인 군목합창단 등 여러 음악단체들이 이 시기 창단돼 전시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예술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당시 개신교인들로 구성된 남성4중창단에서 활동했던 전 계성고 교사 임성길(74)씨는 "그때 대구에서는 김교진, 김동진, 하대응, 이경희, 최규선, 정문숙, 김성태 등의 음악인들이 활동했던 것으로 기억된다"며 "군악을 중심으로 활발한 음악활동이 펼쳐졌다"고 말했다.
임씨에 따르면 국방부 정훈국이 현재의 계산성당 안에 있어 작곡가 김동진·하대응 등이 이 곳에서 군가보급 등에 나섰으며, 김성태는 공군 군악대 일을 맡아 한때 서울대 음대가 자리했던 옛 능인중학교에서 음악활동을 했다는 것.
임씨는 또 "대구 중구 대안동 경북인쇄소 건너편에 위치했던 '불교 교무원'은 당시 이 지역 음악문화의 산실이었다"며 "안병소씨의 지휘로 오케스트라 무대가 열리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피난지 대구는 한국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 잉태됐던 음악사적 현장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김대현의 오페레타 '콩쥐팥쥐'가 대구에서 완성됐고, 김동진의 가곡 '샘가에서' '가고파', 이흥렬의 '바위고개', 변훈의 '떠나가는 배'가 이 시기에 발표됐다.
국내 최고(最古)의 클래식 음악감상실 '녹향'을 54년째 운영하고 있는 이창수(80)씨는 "변훈선생이 작곡한 가곡 '명태'의 노랫말은 당시 대구로 피난와 있으면서 '녹향'을 즐겨 드나들었던 시인 양명문선생이 나중 서울로 돌아가면서 선물로 주고 간 것"이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이씨는 또 "요즘 인기높은 '열린 음악회' 성격의 음악회가 당시 이미 대구에서 개최되는 등 전란 속에서도 대구는 클래식 뿐 아니라 국악·대중가요 등의 음악활동도 왕성했다"고 전했다.
-崔敬喆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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