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어느 종합병원은 지난 주에 인근 약국 약사들과 모임을 갖고 각 과별 처방약 품목과 하루 처방 수량을 약사들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의사들이 의약분업을 주장하며 폐.파업하고 있을 때, 이 병원에서는 실질적인 의약분업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사-약사 협조 필수
이 병원 원무과장은 "인근 약국들이 처방약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약 사는데 고생을 않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의약분업 협력회의. 같은 지역에 있는 의사, 약사, 주민 등이 모여 의약분업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토론도 하고 서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의논하라고 만들어진 모임이다. 그러나 이 회의가 그간 정상적으로 열린 곳은 한 곳도 없다. 의사들이 인정치 않고 약사법 개정 투쟁에만 매달렸기 때문. 지금도 의사와 약사는 정면 충돌까지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 있는 의사와 약사가 협력해야 환자가 약을 찾아 이 약국 저 약국 다니는 고생을 피할 수 있다. 의약분업이 불편만 주는 제도로 받아들여질 때 국민들이 내보일 저항은 불보듯 뻔한 일. 양자의 협력은 의약분업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소비자 알 권리 보장
의사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의약품 마진에 기대고 약사 역시 약을 많이 팔수록 수입이 늘어나도록 돼 있는 구조가 방치된다면, 약품 남용은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될 것이다. 다른 물건과 달리 약은 환자에게 적정량만 투여돼야지 '많이 팔수록 좋다'는 식이 돼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걸 막겠다는 것이 의약분업이라지만, 전문가들은 그것만으로는 그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힘든다고 주의 시킨다. 의료 분야에서도 진정 소비자 주권이 확립돼야만 그 극복의 초석이 놓이는 셈이라는 것. 그것은 환자에게 적절한 정보가 제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이것이 제대로 안되고, 그때문에 의사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게된 환자들은 병을 스스로 판단해 처방까지 한 뒤 약마저 마구 선택하고 사들여 남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의사들은 처방전 뿐 아니라 치료 과정에 대한 정보도 환자에게 공개토록 법으로 의무화되는 것이 좋다는 의견까지 제시되고 있다.
◇총체적 개혁 청사진 필요
계명대 조병희 교수(의료사회학)는 우리나라 의료 문제에는 단순히 의약품 남용뿐 아니라 의료 전달체계, 의료보험 제도, 의사 양성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환기시켰다. 때문에 어느 한 부분 손질만으로는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기 어렵고, 의료제도 전반을 총체적으로 개혁하는 청사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총체적 개혁 청사진을 마련키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한 논의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조교수는 강조했다. 지금까지 이 문제는 의사나 약사들만의 문제인 듯이 방치돼 왔고, 그때문에 이번 의사 폐.파업 사태 때도 의사들은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당신들이 뭔데 남의 일에 끼어 드느냐"는 식의 항의를 예사로 하기도 했다.
◇소비자가 주인 된 개혁
그러나 이런 현상은 바로 우리에게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는지를 반증하는 것일 뿐이다. 의료 만큼 시민 생명.생활과 밀접히 직결된 분야가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이 문제는 결코 의사.약사가 밥그릇 싸움이나 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될 만만한 사항일 수가 결코 없는 것이다. 바로 그 소비자인 일반 시민들이 오히려 주인으로 나서서 이 문제를 풀어 나가야만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의료제도가 우리에게 적합한 것인지, 의료비 수준이나 의사들의 수입은 어느 선에서 책정되는게 적당한지가 먼저 결정될 것이고, 그런 다음에야 현장 실행적 성격의 다른 정책들이 뒤따를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약사법 개정을 비롯한 의료 개혁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李鍾均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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