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위기 지역섬유 중견기업들 줄줄이 도산

지난 5월말 대구시의 권유로 서울에서 열린 패션쇼에 다녀온 지역 섬유인은 불만을 토로했다. 자금 결제가 집중되는 월말에, 그것도 업체와 직접적 연관이 적은 고급 패션쇼에 기업인들이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참석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한 밀라노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밀라노 프로젝트. 대구 섬유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지역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원대한 계획이다. 그러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각론에는 선뜻 내켜하지 않는 섬유인들이 많다.

지나치게 관주도로 나가고 있으며 지역 섬유업계를 살릴 단기대책이 없다는 것. 여기다 패션.디자인을 중시한 나머지 직물.원사 등 지역 섬유의 주축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어 섬유인들의 소외감이 강한 상태다.

추진력을 갖추려면 초기에는 행정력을 갖춘 관에서 주도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업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 것은 분명 문제라는 입장이다.

밀라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한 섬유인은 "업계의 주장을 전달하면 대구시에 밉보이기 때문에 그냥 하는대로 따라 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대구시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지역 최대의 섬유단체인 대구경북견직물조합과 대구경북직물조합은 아예 밀라노 프로젝트 추진위원회(대구경북섬유산업육성추진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또 대구상공회의소도 밀라노 프로젝트와는 담을 쌓고 있다.

이러다 보니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 신제품개발센터 건립을 위해 올해까지 조성해야 하는 민자 15억원도 모일 턱이 없다. 돈을 내야 될 업체들은 주로 직물업체들인데 이들이 밀라노 프로젝트에서 소외되고 있는 까닭이다.

지역 섬유인들은 중견기업들이 하나씩 쓰러지면서 엄청난 위기감에 봉착해 있다. 그런데도 5~10년 이후에 성과가 나타날 밀라노 프로젝트만 강조하는 대구시나 산업자원부가 불만스럽다. 중견 기업인은 "만약 그 때 가서 실패한 프로젝트로 판명날 경우 책임은 누가 지느냐"고 되물었다. 그 때 가서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당장 쓰러질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라도 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주문이다.

여기다 고급 패션만 강조할 게 아니라 지역 직물이 구체적으로 활용되는 행사가 필요한데도 여기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은 전혀 없다는 비판이 많다. 디자이너 중심의 패션보다 대구의 원단과 대중 브랜드를 연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 섬유단체 관계자는 "원사.직물업체가 모두 쓰러지고 난 뒤 밀라노 프로젝트가 성공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지역 섬유업계가 나갈 올바른 방향을 설정.제시해야 하는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도 높다. 밀라노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을 해야 하는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은 민자 출연 지연과 산업자원부의 경상경비 지원 중단 통보 등으로 난항을 겪던 차에 노조가 설립되자 이사장과 원장이 사퇴서를 제출하는 진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밀라노 프로젝트의 중간 점검 및 지역 주종인 원사.직물업종 회생 부문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崔正岩기자 jeong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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