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람도 기업도 서울공화국

대한민국에는 서울만 있다. 돈도 사람도 서울로만 몰리고 지방은 텅 텅 비어가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갈수록 더 심하다. 말이 지방자치이지 모든 권한은 여전히 중앙에서 움켜쥐고 있고 15개 시.도는 서울공화국의 들러리일 뿐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비수도권의 상대적 박탈감은 국민통합을 저해할 정도다. 서울공화국을 규탄하는 분노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지방은 '3등국민'인가하는 자조의 한숨이 산야를 뒤덮고 있다. 계속 서울만 살찌우고 지방은 내팽개칠 것인가. 날로 피폐해지고 있는 지방의 현실을 10여차례에 나누어 심층 진단하고 그 대안을 묻고자 한다.

"최근 지역사립대 교수 2, 3명이 1천만~2천만원씩 연봉삭감을 감수하고 서울지역 대학으로 옮겼습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대학도 서울에 있어야 대접받기 때문입니다"(최만기 산학경영기술연구원장)

"금융자금의 80~9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습니다. 지역금융이 이처럼 공동화된 상태서 지역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진병용 대은금융경제연구소장)

"과거 프랑스 파리의 경우 거지도 파리지앵으로 남으려 했습니다. 서울도 서울생활을 해본 사람은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수도권에 사람.돈.정보.문화시설 등 모든 것이 집중돼있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좁은 땅을 더욱 좁게 쓰는 정부정책은 재고돼야 합니다"(이종현 대구테크노파크 단장)

"서울 대기업 임직원의 85%가 서울지역 대학출신이고 지방대학 출신은 15%에 불과합니다. 지방에 살아도 기회균등과 신분상승이 보장된다면 누가 서울로 가겠습니까" (채문식 대구상의 사무국장)

"일본은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를 도쿄에서 열지 않습니다. 결승전도 요코하마에서 열립니다. 반면 우리는 모든 게 서울 위주입니다. SOC사업도 수도권에 쏟아붓고 있어요. 수도권 자치단체의 양보없이는 비수도권 지역의 발전은 요원합니다"(조기현 대구시 기획관리실장)

지난달 26일 경북대 본관에서 대통령비서실 지역균형발전기획단과 대구시.경북도가 공동개최한 지역균형발전 정책토론회는 시종 정부 성토장이었다. 이날 지역의 학계.언론계.관계 토론자들은 하나같이 비수도권 지역의 상대적 박탈감과 원망을 쏟아냈다.

지난 60년대 이후 수도권 인구는 전국의 20%에서 45%로 두배 이상 증가한 반면 비수도권은 80%에서 55%로 줄었다. 더욱이 80년대부터 수도권지역이 지식기반 신산업중심지로 급성장하는 바람에 수도권의 성장은 더욱 가속도가 붙어 있다. 이런 현상은 수도권과 지방간 현재의 불평등에서 나아가 미래의 불평등으로까지 발전, 지역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그 실례로 요즘 잘 나가는 소프트웨어 업체, 벤처기업, 창업투자회사, 정보통신사업체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그런 사례는 산업연관성이 높은 2.3차산업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 수도권은 일자리가 넘친다는 데서도 두드러진다.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수도권 일색이다. 2, 3차 국토종합개발계획 기간중 수도권에 전체 SOC투자의 40%가 집중투자됐다.

이런 판이니 서울로 서울로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다. 지역의 우수 고교졸업생 유출이 가속화하면서 지역대학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정원 미달사태가 속출하기 시작했고 경북대를 비롯한 지역 대학 졸업생들이 취업시장에서 서울지역의 최하위권 대학보다 천대받고 있다. 그래서 경북대 박찬석 총장이 '인재할당제' 등을 외치며 지방대학 육성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메아리가 없다.

지역의 인재난은 심화되고, 기업도 떠나고 있다. 지역 유망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설립된 '대구벤처펀드' 제1호 투자기업인 인터넷 소프트웨어업체 (주)나라비젼은 서울로 본사를 옮겼다. 본사를 옮기지는 않더라도 서울에 사무소를 두는 기업이 적잖다.

이종현 대구테크노파크 단장은 "열심히 벤처보육을 해놓으면 서울로 가버려 지방은 병들고 힘없는 벤처만 남아 '벤처고아원'이 될 것"이라며 "인재-기술-자본-시장과 네트워크가 모두 서울에 집중돼있어 말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삶의 질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고용기회와 그 질적 수준, 소득 및 생활환경을 고려한 기회지수는 95년 현재 수도권이 비수도권에 비해 1.3배정도 높게 나타났다. 수도권에 돈이 몰린 사실은 내국세 납부실적에서도 알 수 있다. 수도권의 내국세 납부력은 비수도권보다 3배나 높았다. 내국세 납부지수는 96년 현재 수도권이 150인데 반해 비수도권은 50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 전체 내국세 중 납부비중이 5%를 넘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2%대로 추락했다. 그나마 포항에 본사를 둔 포항제철이 대구국세청 관할인데도 그렇다. 경제력 약화-납세실적 저조-지방재정력 취약이란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수도권은 고급 일자리, 행정 및 기업의 중추관리기능, 연구 및 우수교육기회, 정보접근 기회 등이 풍부하다. 또 각종 문화활동을 위한 기반 역시 우수하다. 때문에 아무리 수도권 억제정책을 써봐야 전입인구는 폭발적으로 늘게 돼있다. 자연히 서울은 난개발의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치.행정.국제.금융.정보 등 제반 중추관리기능이 수도권에 집중하다보니 부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과 돈이 한 곳으로 몰리는 일극(一極)집중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수도권의 면적은 전체 국토의 11.8%에 불과한 반면 인구와 GRDP규모는 46%나 차지하고 있다. 서울은 면적이 0.6%에 불과하나 인구와 GRDP의 비율은 22%로 월등히 높다.

이러한 수도권 일극집중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높은 수준이다. 수도권 집중도가 비교적 높다는 이웃 일본의 실물부문 수도권 집중도는 20~30%이나 우리는 46%에 달한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제력 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98년도 지역내 총생산(GRDP)규모는 424조7천918억원으로 97년도 432조1천950억원에 비해 1.7% 7조4천억원이나 감소했다. 그러나 수도권의 GRDP는 0.2% 감소한 반면 비수도권은 3.1%나 감소, 수도권과 지방간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98년 1인당 총생산도 수도권은 전년비 1.7% 감소에 그친 반면 비수도권은 3.6%나 감소했다.

일극집중에 따른 지역자금의 역외유출도 심각한 수준이다. 요즘 포항지역 재래 상가와 시장은 불경기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이 지역에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할인점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지역자금을 쓸어담아 서울로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금.무역 등 본사기능을 서울에 둔 지역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전국은행과 지역 금융기관, 증권회사.투신사.보험사 지점, 우체국 등이 지역자금을 모집, 서울로 가져가고 있다.

한마디로 서울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지방의 사람과 돈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넉넉한 자금으로 사람을 끌어모으고, 사람은 또 돈을 부르고, 그래서 수도권은 더욱 공룡화하고 있다.

경북대 하영호 교수는 "정책결정권자인 '1등 국민' 서울공화국 사람들이 '3등 국민'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않는 게 지역불균형발전의 근본 원인"이라며 "공룡이 어떻게 죽었는지 서울사람들은 되새겨봐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曺永昌기자 cyc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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