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양 겨드랑이에 목발을 짚고 절뚝이며 나타났다. 오른발을 기브스한 상태로."연습하다 넘어져서 좀 다쳤심더' 뼈가 금이가 3주째 기브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장애인의 아픔을 실감했겠네요'
"어이구, 정말 그렇심더. 이젠 장애인역이라면 제대로 연기할 것 같네예'
연극배우 김헌근(金憲根·38). 저잣거리에서 무심히 스쳐지날 것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얼굴. 도수높은 안경에 턱수염이 숭숭한 인상은 평범하다. 웃을 때는 만화주인공 꺼벙이 같다.
하지만 무대에 서면 그는 돌변한다. 할리우드 배우 짐 캐리처럼 표정이 변화무쌍해진다. 얼굴 근육을 한껏 밀고 당기고 우그러뜨리면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고, 부르르 떨게 만든다.
광대 김헌근.
지난 81년, 대학(경북대 임학과) 신입생 김헌근은 캠퍼스에서 장고를 치며 신명나게 노는 한 놀이패와 마주쳤다. 왠지 마음이 이끌려 들어간 곳이 '민족문화연구회'. 당시 살얼음판 같던 사회분위기에서 탈춤반은 소위 '운동권'의 소굴(?)이었다. 그는 탈춤과 풍물을 배우며 사회현실에 눈뜨게 됐고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밤새워 사회정의를 논했다.
"그 땐 커피도 매판자본이라 하여 마시면 안되는 줄 알았지예. 그저 탈춤 추고 토론하고…. 우리 식의 낭만이었지예 뭐' 공부는 뒷전이었지만 다행히 낙제는 하지 않았다. "운동권 학생들을 겨냥한 '녹화사업'(군입대)에도 끌려갈 뻔 했는데 눈 나쁜 덕을 봤심더'
83년 11월, 탈춤반과 연극반 출신들이 주축이 돼 '놀이패 탈'이 만들어졌다. 현실사회문제를 담은 공동창작물 공연이 주요 취지. 85년 3월, 대구교육문화회관에서 가진 첫 공연은 한·일문제를 다룬 마당극 '내 차라리 계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이었다. 그는 못된 일본인 순사역을 맡았다. 잇따라 일본군 위안부 주제의 '엉겅퀴꽃'(88년),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이 땅은 니캉 내캉'(88년), 전교조문제를 다룬 '선새앰요'(89년) 등에 출연했다. 공연을 방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불손한 연극으로 치부되는 서러움도 많이 받았지만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들풀처럼 끈질기게 막을 올렸다. 관객들의 눈물과 뜨거운 박수소리가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됐다.
배고픈 연극계의 현실에서 한때 마음이 흔들렸던 그는 몇군데 입사시험도 쳐봤다. 6월 민주항쟁 무렵, 도서관에서 취직시험공부를 하고 있자니 바깥의 선후배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몸이 들썩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날, 한 선배가 "임마, 니가 잘하는 걸 하는 것이 가장 잘 사는기라'고 한 말이 불을 질렀다. 책을 덮고 그 길로 다시 마당극판에 뛰어들었다.
90년 12월엔 극단 '놀이패 탈'이 '함께 사는 세상'(함세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활동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이후 그는 골프장 문제를 다룬 '꼴푸공화국'(90년), 노동자 문제의 '노동자, 내 청춘아'(91년), 해직교사를 다룬 '해직일기'(92년) 등 지금까지 쉼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배우부족으로 한 무대에서 이 역 저 역 정신없이 맡아야했지만 고된 줄도 몰랐다.
93년 문민정부 출범이후 민족극계가 정체성 문제로 혼란을 겪으면서 그의 활동도 위축됐지만 지금은 안정돼가는 추세. 그전처럼 날카롭게 메스를 들이대는 대신 현실을 폭넓게, 깊이 들여다보는 쪽으로 바꾸고 있다.
"세상 참 많이 달라졌지예. 지금은 민예총도 문예진흥기금 지원혜택을 안받심니꺼' 달라진 세월속에 김헌근 자신의 위치도 많이 달라졌다. 내성적인 풋내기 배우가 마당극계의 버팀목으로 컸다. 이제 대구에서 김헌근을 빼놓고는 마당극을 논할 수 없다. 배우층이 얇기도 하지만 자신을 극 속에 계산없이 '풍덩 빠자뿌리는' 프로근성 때문이다. 96년 부터는 민예총 대구지부 사무처장도 맡고 있다. 그런 공로에 대한 평가일까. 제7회 전국민족극한마당(98년)에서 최우수 연기자로 뽑혀 '민족광대상'을, 지난해엔 한국예술인후원회의 제1회 '예후예술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오래 버텼다꼬 상도 주데예'
요즘 그는 1인극 '호랑이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이태리극작가 다리오 포 원작으로 국내 초연. 65년전 중국 홍군(紅軍)의 대장정(大長征)을 배경으로 부상당한 병사와 호랑이의 만남에서 시작되는 현실풍자극. 지난해 6월 대구 '예술마당 솔'에서 첫 공연후 서울 대학로에 진출, 한달간 공연했다. 그는 90분 내내 걸쭉한 경상도 깡사투리로 무대를 휘저었다. 관객반응도 기대이상이었다는 평. "촌놈이 서울가서 평균치는 안했심니꺼'
'호랑이 이야기'는 올해 광주비엔날레 우수마당극 퍼레이드에 참가했고 이달엔 성주 금수문화마을 초청공연과 비교민속학회 초청공연, 9월엔 부산·진주 등지의 초청공연이 잡혀 있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얼마전엔 별난 해프닝을 벌였다. 한 연극인과 둘이 청도 남산 숲속에서 벌거벗은 채 호랑이 흉내를 냈던 것. "네 발로 산을 기어 오르내리기도 하고, 어흥! 큰 소리로 포효도 해봤심더'
20년 가까이 걸어온 외길, 분명 춥고 배고픈 길이다. 힘겨울 때면 '나는 이슬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자위할 때도 있고, 맞벌이하는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기댈 때도 적지 않다. 5남1녀의 막둥이가 광대짓하는 것이 마뜩찮은 부모님은 아직 그의 공연에 와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는 이길 가는 것을 후회않는다.
"이기 내직업 아입니꺼. 이 길 안가마 사망인기라예' 자못 단호하다.
'마당쇠 헝그니(헌근이)'. 그는 오늘도 빈자와 부자, 낮은 자와 높은 자가 서로 도우며 어우러지는 '함께 사는 세상', 그 낙원을 꿈꾸는 광대이다.
全敬玉기자 sirius@imaeil.com
---1인극 '호랑이 이야기'
국내 초연인 '호랑이 이야기'는 지난 9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태리 극작가 다리오 포 원작. 중국의 시골장터에서 상하이(上海) 사투리로 공연하는 연극을 본 포가 이를 각색, 이태리 사투리로 극본을 쓰고 직접 연기도 했던 작품. 이 작품의 독일어본을 입수한 김창우 교수(경북대 독문학과)가 대구사투리로 번안, 연출하고 극단 '함께 사는 세상'이 제작했다. 김헌근의 대표작.
극의 배경은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중국 홍군(紅軍)의 대장정. 총상으로 낙오된 한 병사가 새끼잃은 어미 호랑이의 굴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호랑이의 도움으로 마을의 국민당과 일본군을 물리치게 되지만 결국 마을사람들은 호랑이는 변증법을 모르므로 산이나 동물원으로 보내야한다고 윽박지른다. 기득권층의 부조리, 관료주의, 교조주의를 웃음과 풍자로 신랄히 꼬집는 내용이다.
김헌근은 여기서 병사, 호랑이, 교사, 학부모 등 여러 역을 맡아 신들린 듯 연기한다. 호랑이를 쫓아내라는 간부들의 목소리를 YS, DJ, JP의 목소리로 모창하는 것도 재미있는 애드립. 짙은 정치성과 사회성이 전편에 깔린 가운데 능청맞은 해학과 풍자가 관객들을 90분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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