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전공하고 있는 음악을 비롯, 대부분 예술분야에서 대구는 서울에 비해 그리 큰 실력차가 난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역에서 걷힌 문예진흥기금이 서울로 다 들어가고 유입된 돈의 극히 일부만 다시 내려오는 현실에서 어떻게 지역의 문화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계명대 음악대학 이승선 교수는 서울과의 문화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오류부터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에 대한 재정적 뒷받침이 형편없는 상태에서는 잘 익은 예술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재정이 빈약한 상태에서 문화에 대한 행정이 바로 될 리도 없겠지요. 예술을 잘 모르는 공무원이 문화행정을 이끌어가다보니 그나마 확보된 문화예술 예산도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합니다. 모든 단체에 제한된 기금을 골고루 할당하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경쟁력있는 문화예술단체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이 교수는 '공평분배 방식'의 예산운용으로는 대구예술의 체질개선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했다.
"이런 현실이고 보니 음악을 예로 들면 '인간관계에 의해서' '인사치레를 위한' 음악회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그런 목적에서 행사를 열면 유료관중이 있겠습니까"지역의 예술인들이 먼저 프로의식으로 무장해야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좋은 품질의 예술을 만들면 황무지에서도 꽃은 피어날 수 있다는 것.
"마지막은 역시, 시민들의 의식입니다. 서울 사람들은 일등시민이라는 자부심이 있잖아요. 문화예술은 물론, 모든 사회 요소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얘기겠죠. 대구·경북 지역민도 이제 깨어나야 합니다"
崔敬喆기자 koala@imaeil.com
93:10, 141:28, 64:5….
대학팀과 중학팀간에 벌어진 농구대회 결과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 숫자는 서울과 대구의 공연시설, 영화관, 박물관 숫자(문화관광부 통계자료)를 비교해놓은 것이다. 물론 앞은 서울이고 뒤는 대구다.
인구는 대구가 250만명, 서울이 1천만명이니까 약 4배 차이를 인정한다 해도 격차가 너무 많이 벌어진다. 공연시설은 10배에 육박하는 차이를 보이고 박물관은 무려 13배에 이른다. 그래도 5배에 조금 못미치는 차이를 보인 영화관은 인구비례와 비슷하니 위안을 던져준다. 대구를 영화도시라고 홍보해야 할 판이다.
나머지 미술관·전시실·국악원 등의 숫자를 비교해도 현상은 마찬가지다. 비교해본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서울, 부끄러운 대구·경북'을 확인하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길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정치·경제 등 이 나라의 모든 시스템이 그러하듯 문화에서도 '서울 중심, 지방 소외'구도는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아름다운 서울, 초라한 대구
서울특별시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 달의 문화행사란을 클릭하면 깜짝 놀란다. 공연·전시 등 각종 문화행사가 너무나 많아서다. 음악공연만봐도 거의 매일 4, 5개의 무대가 막을 올린다. 클래식은 물론 대중음악 등 메뉴도 다양하다.전시는 더 많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을 세는 것도 힘들다. 이 달에만 수백개라고 보면 된다.
공연·전시시설 등 문화공간이 많으니 이 많은 행사를 수용하기가 어렵지만은 않다. 다른 시설을 보자. 문화관광부의 한국문화공간 종합안내 시스템에 따르면 미술관은 12배, 전시실 7배, 화랑 5.5배, 도서관 11배 등 서울의 모든 문화 시설이 인구비례를 감안하더라도 대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대구는 어떤가. 대구시내 공연장에서 이 달에 열렸거나 열릴 예정인 음악공연은 손에 꼽을 정도다. 기껏해야 10개를 간신히 넘는다. 다른 문화행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공룡, 이제는 내놔라
어떤 공연장이든, 또 어떤 영화관이든 관객들은 입장권을 산다. 그리고 관객들은 '문예진흥기금'도 함께 낸다. 영화관람권에는 총액의 6.5%, 공연장 입장권에는 6%정도의 문예진흥기금이 매겨진다. 정부가 문화예술산업의 진흥을 위해 준조세형태의 돈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 기금을 관리하는 문화관광부 산하 '문예진흥원'에 따르면 전국에서 1년에 조성되는 기금은 약 200억원.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엄청난 돈을 곧장 올려보냈다.
하지만 대구시가 올 해 문예진흥원으로부터 지원받은 문예진흥기금은 2억4천여만원. 전체 기금조성액의 1%를 약간 넘긴 돈만 전국 3대 도시 가운데 하나라는 대구시에 들어왔다.
대구시 문화예술과 한 관계자는 "98년까진 2억원에도 못미쳤는데 지난 해부터 조금 오른 액수"라며 "지방자치단체를 통하지 않고 문예진흥원이 직접 지원하는 액수까지 포함하면 연간 약 3억원정도의 기금만 대구에 지원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방자치시대에 지역에서 걷힌 '준조세형 기금'을 고스란히 서울로 올려보내고 그 1.5%정도만 '감격스럽게' 받아드는 서글픈 일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이와 관련, 문예진흥원 기금운용팀은 "서울지역에 영화협회나 상당수 예술단체가 밀집해있어 지원되는 액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기금을 지원받은 서울지역 예술단체가 지방순회공연을 하기때문에 지방 사람들도 혜택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전문기획사 코리아트 허균렬대표는 "몇 년간 공연을 하면서 티켓에 부과된 문예진흥기금만 1천만원이 훨씬 넘게 바쳤지만 한번도 기금을 지원받아 본 적은 없다"며 "지방 공연기획사의 영세성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서울이 뺏어가는 것은 지역에서 걷힌 돈만이 아니다. 지역에서 발견된 문화유적도 예외일 수 없다.
지난 달 17일 대구시 동구 팔공문화원에서 열린 '지역문화현실과 문화정책' 세미나에서 임재해(안동대 민속학과) 교수는 "안동 사람이 하회탈을 보기 위해 서울의 중앙박물관에 가야 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며 "지역문화유물이 대부분 서울로 반출돼 재정이 확보된다해도 지역박물관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또 "박물관의 중앙집권적 실태만 보더다도 우리나라 지역문화의 중앙에 대한 종속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지역문화의 독자성은커녕 지적재산권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도 반성하자
대구시립교향악단을 비롯, 대구시가 재정을 뒷받침하는 국악단·합창단·오페라단·무용단 등은 전문가들로부터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과는 달리 객석은 항상 초라하다.
학생들이 슬리퍼를 신고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팸플릿이나 얻어가려고 들른 뜨내기 관람객들이 분위기를 망친다. 정작 문화예술을 즐길만한 성인들은 공연장에서 발걸음을 멀리하고 있다.
우리가 격차를 좁히려는 '서울'은 무명 성악가가 독창회를 열어도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관객이 많으니 웬만한 공연도 흑자가 난다. 음악인의 실력은 대구와 별 차이가 없지만 관람객의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다. 대구는 서울과 달리 시민 스스로의 문화 재생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대구의 몇몇 예술인들은 새로운 시도를 통해 대구를 경쟁력 있는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 다소나마 희망을 던진다. 문화기반과 재정 등에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중앙과의 차이를 다양하고 기발한 소프트웨어로 극복하자는 운동이다.
거리공연이 하나의 예다. 시민들이 공연장을 찾기 어렵다면 거리에서라도 다양한 예술행사를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국채보상기념공원, 교보생명 앞 광장 등에서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진다.
게다가 대구시도 지난 봄부터 공원을 개방, 거리공연과 전시의 장소로 활용토록 하고 적게나마 예산지원까지 하고 있다.
거리공연을 주도하고 있는 축제문화연구소 조성진 소장은 "이 지역에서는 문화를 포함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해도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척박한 토양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서울이 갖고 있는 '신화'를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극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또 "지역만의 전통(Locality)은 파괴된 지 오래"라며 "현재의 대구 모습, 예를 들면 동성로의 야시골목 등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이 지역의 문화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키고 이를 경제·문화적 상품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崔敬喆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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