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금융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불과 몇 주전에 우리는 의료대란을 겪은 바 있기 때문에 대란시대에 살고 있다는 침통한 마음을 가졌다. 의료대란이 사람의 목숨을 볼모로 잡는 것이라 한다면 금융대란은 경제활동인 일상적인 삶까지도 볼모로 잡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란에는 나름대로의 타당한 논리와 근거가 있을 것이다.
의사들에게는 '의권(醫權)'이 있어야 하며 또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의권'이 고통 속에 부르짖는 환자들의 신음마저 외면해야 했다는데 바로 비극이 있다. '의권'이란 사람을 살리는 일과 관련되리라 믿었던 상식이 깨어진 것이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관치금융(官治金融)' 여부를 따지기 위해 금융대란이 필요한지 회의하게 만든다. 경제의 흐름은 혈액의 순환과 같아서 잠시라도 중지되면 경제가 파탄의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부담할 공적자금이 거의 모든 은행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채권자나 대주주의 입장에 선 정부가 은행에 간섭하는 일을 '관치'라 단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이 금융계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은 정부의 잘못된 간섭에 기인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관치'란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의료대란이나 금융대란은 완전 해결된 것이 아니라 잠복상태로 들어갔을 뿐이다.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뛰어오를지 알 수 없다. 고속철도 건설공단, 환경관리공단의 노조들이 파업에 들어가고 의료보험공단에서는 심각한 폭력사태까지 발생했고 롯데호텔에는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의 이러한 갈등과 반목들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듯 했다.
개혁은 상처를 도려내는 아픔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 고통 뒤에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이를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사회의 도처에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고통을 얼마나 잘 견디느냐에 승패가 달려있다. 개혁 뒤의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개혁을 위한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갈등과 반목이 증폭되고 심화될 뿐이다. 우리는 대통령의 처분만 기다리는 장관들의 무소신을 한탄하며 철저한 준비, 충분한 대화, 흔들림 없는 의지, 그리고 이에 더하여 국민을 두려워하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충영(경북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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