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량상품·AS소홀...그냥 못넘겨

인터넷이 제공한 여론의 자유에 힘입어 '안티(Anti) 사이트'가 폭발하고 있다. 70~80년대 억울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그저 '억울하면 출세하라'식의 체념으로 분함을 삭이던 소시민들이 90년대 들어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이제 인터넷을 무기로 조직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다.

국내 안티사이트의 시초는 지난해 7월 개설된 '골드뱅크를 탈퇴하려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골드뱅크의 선전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이가를 지속적으로 비판, 처음엔 냉담했던 골드뱅크를 서비스 개선에 나서도록 유도했다.

'안티 사이트'의 주공격 대상으로는 자기의 이익만 챙기고 소비자와 직원들을 우롱하는데 익숙한 국내기업들이 우선 꼽히고 있다. antipyramid.org/,www.antihyundai.pe.kr, www.noland.co.kr, www.antianycall.org/, www.ihateifree.com/……. 모두 과장광고 또는 애프터 서비스를 소홀히해 소비자의 불만을 산 기업을 대상으로 도전장을 낸 안티사이트들이다. 예전같으면 그저 해당 회사에 항의하거나 소비자보호원에 고발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될 땐 '부조리'한 세상을 한탄 하는 것으로 끝내던 시민들이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게 된 반증이다.

실제로 영업사원의 권유로 트라제를 구입했다가 결함을 발견, 시정을 요구했으나 현대측이 무성의한 반응을 계속하자 격분한 윤희성씨는 www.antihyundai.pe.kr을 개설, 위력을 과시했다. 지난해 12월 개설한 이 사이트에는 하루 3천여명씩 4개월만에 13만여명이 방문, 네티즌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결국 현대자동차는 올해 4월 사과문을 발표하고 안티현대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트라제를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평범한 시민 다윗이 인터넷을 활용, 국내 최대기업 현대라는 골리앗을 굴복시킨 셈이다.

네티즌의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엄청난 폭발력을 가질수 있는 인터넷의 특성은 이제 단순한 불만표출과 시정요구를 넘어서 사회변혁운동의 한 수단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다. 언론개혁을 주창하는 안티조선일보(www.urimodu.com/)와 안티미스코리아(myhome.netsgo.com/antimiss/) 등이 대표적인 예.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총선연대의 문제점을 역으로 비판하는 안티총선연대(www.korealover.com)도 생겨났다.

그러나 익명성을 보장받은 '안티' 사이트는 억눌리거나 쌓였던 분을 시원하게 풀어놓고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펼칠 기회를 주는 반면, 최대 장점인 그 익명성 때문에 무책임하고 수준이하의 비속한 언어들이 가득한 저속한 공간이 될 우려도 높다.

지난 4월 수학여행 때 교복을 입도록 방침을 정한 학교에 반발해 '학교 까제끼기' 사이트를 만들어 온갖 노골적인 욕설로 교사들을 비방한 울산 모중학교 사례는 그 심각성의 일단을 보여준다. 더욱이 일부 학생들은 이런 사이트에 대해 '후련하다' '멋있는 기획'이라는 반응을 나타내 '무책임한 인터넷의 자유'가 심각한 사회문제를 불러올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티 사이트의 증가는 사이버 공간을 통한 적극적 사회참여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이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익명성을 남용한 무책임한 글들이 네티즌 사이에서 자정되지 못할 땐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네티즌의 건전한 비판정신"이라고 말했다.

石珉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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