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외유장각 도서 반환

고려 성종 12년 거란의 80만 대군이 쳐들어 왔을 때 서희(徐熙)가 펼친 담판외교는 우리 외교사 가운데 탁월한 성과로 꼽힌다. 당시 평양 이북의 땅을 떼어 주고 화의하자는 주장이 대세였는데도 그의 외교가 성공한 것은 거란의 국내 정세와 의도를 속까지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가 송(宋)과 외교적으로 밀착되자 거란이 불만을 품고 침입한 것으로 판단, '고구려는 고려의 옛 땅'이라는 명분론을 내세워 거란군을 돌려보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프랑스는 1866년 선교사 처형에 항의하면서 강화도 일대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그 때 이 섬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 일부와 은괴를 강탈하고, 수천 점의 문화재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지금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외규장각 도서들은 조선왕조의 중요 왕실 행사를 정리한 문서들로 국가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 함대가 저지른 이같은 파괴와 약탈은 어떤 논리로도 용납될 수 없다. 불타버린 문화재들은 원상을 살려낼 방도가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불법적으로 강탈해간 도서들이라도 당연히 되돌려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 도서의 반환은 10년이 넘게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1993년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휘경원원소도감의궤' 1권만 상징적인 의미로 돌려 준 적이 있다. 한.불 두 나라가 최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열린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한 3차 전문가 협상에서 전체 296권 가운데 유일본 60권을 우선 반환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의 다른 고문서들을 주고 받아오는 식의 '맞교환 조건 반환'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으며, 국내 전문가들의 큰 반발도 예상되고 있다.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가 강탈해간 불법반출 문화재이므로 반환 요구는 당연한 우리의 권리이다. 그런데도 '교환 반환'하려는 움직임은 그들의 약탈행위를 용인하는 의미 이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완전 반환'만이 우리 문화재의 존엄과 자존을 지키고 법적인 정의를 회복하는 길이라는 점을 떠올려 볼 때 '제2의 서희'가 그립기만 하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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