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파행 엿새만에 정상화의 길을 찾았다. 한나라당이 4.13 총선 '부정선거'시비를 다루기 위한 국정조사권 발동과 검찰총장 출석 요구를 철회하는 대신 법사위-행자위 연석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다루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국회가 추가경정예산안, 정부조직법, 약사법 개정안, 금융개혁을 위한 금융지주회사법 등 민생 관련 법안들을 다루게 되어 다행스럽다. 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다시 파행에 빠지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바란다.
우리가 국회의 역할을 중시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 경제가 다시 곤두박질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지난 97년에 우리들이 IMF사태를 당한 배경에는 국회가 경제문제 해결을 등한시한 채 대권 싸움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치권이 노동법 파동이후 대선 정국에 휘말리면서 한보와 기아 사태 해결의 발목을 잡은 결과 우리 나라 국제신인도가 하락하면서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무렵 우리처럼 외환위기를 겪은 태국과 외환위기를 겪지 않은 대만 등을 비교해 보면 후자는 국회와 정당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을 차단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지난 4.13 총선에서 신진들이 많이 당선되어 이번 16대 국회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엿새동안 표류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해결할 길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정당들이 국회 밖에 있는 정치세력에게 끌려 다니다 보니 국회가 파행을 면치 못하고 있으나 앞으로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 집권당의 경우 대통령이 당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으니 후자가 독자적인 국회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고 반대당은 당수나 원외 세력의 눈치를 보는 바람에 타협의 정치를 하기가 힘들다. 정당간의 타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 흔히 집권당과 반대당의 최고지도자가 만나 소위 영수회담을 개최하여 국정현안을 해결한다.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영수회담이 국회기능을 대체하는 바람에 국회는 더욱 유명무실해진다.
이러한 국회 운영의 악순환을 방지하려면 우리 정당이 사당(私黨)적 성격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지도자가 정당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특정 지도자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런 사당적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은 공천에 관련된 당수의 전횡을 막는 상향식 공천제도의 도입이다. 예컨대 유권자가 예비선거를 통해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하는 경우 국회의원들이 당수의 지시보다 유권자의 민생관련 문제를 더욱 열심히 다루어나갈 것이다.
또 국회 파행을 막으려면 우리 나라 정당의 원외 정당적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비선거기간(非選擧期間)에 당의 활동이 국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원내 총무가 당의 사무총장이나 정책위의장이나 대변인들의 활동을 통솔할 수 있도록 중앙당조직을 개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무총장이 관장하고 있는 원외 조직인 현행 지구당 조직을 지역구 협의회 형식의 비상설 조직으로 개편해야 한다. 현행 지구당은 당원 관리가 주 업무인데 앞으로 정당의 핵심을 당원(Party member)이 아니라 지지자(Supporter)로 보고 국회활동을 통해 지지자 확보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유민주국가에서는 당원이 없더라도 지지자가 많으면 권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당 개혁을 통한 정치개혁이 없으면 우리가 제2의 IMF사태를 맞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치권은 하루 빨리 정당 개혁을 추진하여 생산적인 타협 정치를 통해 국회를 정상화시키고 우리 경제를 건실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김용호(한림대교수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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