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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리뷰-예술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컴퓨터 상에서의 전략 전쟁 게임이 유행이다. 그들은 비록 가상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 적군과 싸워서 이겨 자신의 국가를 건설하면서 쾌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느낀다. 현실에서 시간이나 공간과 같은 환경적 제약으로 인해 실현 불가능한 일들도 이처럼 가상 공간에서는 가능하다. 청소년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기쁨을 만끽하는 것처럼 가상 공간의 이상형으로부터 얻는 만족감이 때로는 현실에서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 공간에서의 이상 추구와 이로부터 얻는 만족감은 진정한 것이 아니며 지속적일 수 없다. 이와같은 현대 사회의 현상을 피그말리온 신화가 시사하는 바와 관련하여 분석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제시문에서 피그말리온은 현실의 여자에 실망하여 자신의 뛰어난 조각 기술로 가상의 이상적 여성을 조각하여 그 조각상의 모습에 매료되어 사랑에 빠지고 만다. 제시문에서 피그말리온은 여자 조각을 만들고 생명이 없는 그는 상대와의 교감이 아닌 자신의 감정만 전달하는 일방적인 사랑을 한다. 현실에서의 혐오스런 여성관을 가졌던 그는 자신의 조각상에 정성을 쏟으면서 자신의 조각상의 세계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실망스런 여성들의 모습에 대하여는 그것의 개선 의지나 새로운 면모의 탐구 시도 없이 조각상의 외면에만 빠져 현실에서의 여성관을 바르게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피그말리온의 행태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같다.

오늘날 우리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도 가상 공간에서는 자신의 뜻에 따라 자유자재로 설계하고 실현할 수 있다. 이러한 생활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은 마치 현실 세계에서도 자신의 이상의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수가 생긴다. 그러나 곧 가상 공간과 현실 세계의 차이점, 가상 공간에서 실현되는 내용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 순간 현실에 대한 절망감은 더 크지게 되는 것이 문제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애완 동물 기르기 프로그램이 그러하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애완 동물 기르기 프로그램은 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간접적인 동물 기르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 동물을 기르는 동안 아이들이 갖는 그에 대한 집착은 기르던 동물이 죽게 될 경우 현실에서 동물을 기를 수 없다는 환경적 제약에 대한 불만까지 가중돼 그 실망감은 더욱 증폭된다. 사이버 연예인 사귀기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원하는 조건만을 갖춘 가상 공간에서의 사이버 연예인은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정서적 만족감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가상 공간이 아닌 현실 세계로 빠져 나오게 되면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이버 연예인과 같은 대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실망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인간은 현실 세계에서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현실 도피적 환각의 요소와 이상을 꿈꾸는 열망의 요소를 동시에 가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상 공간과 현실 세계를 넘나들면서 느끼는 순간적 만족감은 우리를 공허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대상에 대한 독점 의욕과 집착은 자신을 이기적으로 만들고 세상에 대해 좁은 눈을 갖게 할 수도 있다. 현실과 가상 공간을 동시에 접해야 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현실 세계의 실상을 외면한 채 맹목적인 이상만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주어진 환경적 조건을 고려하면서 현실에서의 삶을 더욱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이상을 추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50차 문제 총평

논술문제를 접했을 때 첫째 할 일이 문제의 요구사항을 분석하여 충분히 이해하는 일이다. 이 문제에서 요구하는 요점은 '신화가 현대 사회에서 시사하는 바를 분석하여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논제를 다루는 과정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신화가 현대사회에서 시사하는 바를 분석해야 한다. 둘째, 분석된 내용을 기초로 하여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다. 그러므로 먼저 피그말리온 신화를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다음 그에 맞는 현대사회의 특성을 찾아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거꾸로 현대사회의 특성에다가 신화의 요소들을 대입시키려 하면 신화를 너무 주관적, 작위적으로 해석하게 될 가능성이 크므로 이런 접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50차 문제의 최우수작으로는 경상 여자 고등학교 2학년 이은혜 양의 글을 선정하였다. 이은혜 양은 쉽게 파악하기 힘든 논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잘 파악하였다. 그리고 신화가 현대사회에서 시사하는 바를 현대사회의 사이버 문화 현상과 연계시킨 점도 훌륭하다.

또, 본문 전개 과정에서 현대 사회의 사이버 문화 현상이 현실 도피의 환각적 요소와 이상을 꿈꾸는 열망의 요소가 동시에 작용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분석된 내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기술한 점은 이 논지를 성공적으로 전개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은혜 양의 논술문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서론은 무난하게 잘 되었다. 특히, 피그말리온 신화와 관련되는 현대 사회의 특성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문제를 제기한 점은 이어질 논제 확인을 분명하고도 쉽게 할 수 있게 한 것으로 다른 사람들도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본론 첫째 단락에서 제시문을 정확하게 분석해 보이면서 논제를 잘 이해하고 있음을 과시하는 한편 다음 단락 전개의 바탕을 마련한 점은 연계성과 단계성을 살린 측면에서 잘 되었다. 그리고 둘째 단락에서 분석된 내용을 문제의 요구에 맞게 현대 사회의 특성과 연관지은 것도 좋다. 결론의 마무리도 무난하다. 다만, 본론의 끝에서 신화가 현대사회에서 시사하는 바에 대한 자신의 견해 표명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결론에서 급작스럽게 마무리를 하려고 하니 상대적으로 자신의 견해에 대한 타당성 확보 과정이 미약해지는 결과가 되고 있다.

---52차문제

뒤처지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인 소수자에게 비친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는 '다수의 압제는 해악임'을 주장하는 글이며, ㈏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minority)를 대하는 자세의 문제점'을 언급한 글이다. 이 두 글을 참조하여 뒤처지고 힘없는 소수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들어 비판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

㈎ 이제는 '자치'니 '국민의 국민 자신에 대한 권력'이니 하는 말로써는 사실의 진상을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권력을 행사하는 '국민'은 반드시 권력을 행사받는 민중과 동일하지 않다. 또한 이른바 '자치'라는 것은 각자가 그 자신에 의해서 통치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통치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의사라는 것은 실제로는 국민 속에서도 최다수 혹은 가장 활동적인 부류의 의사, 즉 다수자나 또는 자기네들을 다수자로서 인정시키는 데 성공한 집단의 의사를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이 그 성원의 일부를 억압하려는 욕망을 가질 수도 있다. 이러한 억압에 대해서는 일체의 권력의 남용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경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개개인을 지배하는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은, 권력의 장악자가 그 사회, 즉 그 사회 속에서의 가장 강력한 당파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일정한 책임을 지는 경우에도 그 중요성은 조금도 감소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사상가의 지성에도 그리고 실제상의 이익이나 추정상의 이익이 원래 민주주의와는 상반되는 유럽 사회의 유력한 계급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즐겨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널리 유포되었다. 이리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정치적 문제를 생각할 경우에는 '다수자의 압제'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회가 경계해야 할 해악 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중에서

㈏ 사람은 제각기 다르다. 다른 점을 다르게 보기만 하면 괜찮다. 문제는 그 다름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다. 여자라고 어린애라고 무시하고, 몸이 불편하거나 좋아하는 성(性)이 다르다고 냉대하며, 피부나 국적이 다르다고 멸시하는 것이 문제다. 한쪽이 우월감으로 무장해 다른 쪽을 차별하고 속죄양으로 몰아감으로써 숱한 비극이 생겨난다. ------ 우리는 얼마나 민주화되었을까. 민주주의가 숫자의 문제, 투표의 문제라면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의 알맹이가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 데 있다면, 아직 걸음마에 불과하다. 사회의 주류가 다수로서의 발언권을 확보한 뒤, 그 다수에 편입되지 못한 소수자는 더욱 고립될 수 있다.

소수자를 존중하는 만큼 주류 사회의 몫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단견이다. 어떤 면에선 누구나 소수자이다. 이 땅에서는 네팔인이 소수자 취급을 받지만, 네팔에 가면 한국인이 소수자가 된다. 소수자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깊이를 더하게 한다. 서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경험은 관용에 바탕을 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바탕이다.

한인섭, '왜 '마이너리티의 소리'인가' 중에서

◎응모요령

글의 길이는 빈칸을 포함하여 1,500자 안팎(±150)이 되게 할 것.

제목을 쓰지 말고 본문부터 시작할 것.

원고마감 일자 : 7월 29일(토요일)

우편으로 응모할 경우 봉투 겉면에'제52차 학생 논술 응모'라고 반드시 쓸 것.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2가 71 매일신문 논술 담당자 앞 (우) 700 - 715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166 일신학원 논술 담당자 앞 (우) 700 - 412

학교와 학년, 집 전화번호를 밝힐 것.

당선작은 본지에 강평과 함께 게재.(상장과 부상은 학교로 우송함)

※PC통신과 인터넷으로도 원고를 접수합니다.일신학원-ilsin@ilsin.co.kr하이텔-maeil01, 천리안-maeil5, 나우누리-maeil001, 유니텔-s2mi, 인터넷kjk@m2000.co.kr---쟁점 리뷰… 예술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다. 그것은, '인생이란 무엇인가?','사랑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에 단일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술을 보는 관점은 지극히 다양하지만, 이 글에서는 모방적인 관점, 실용적 관점, 표현적 관점, 형식적 관점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한다.

모방적(mimetic)관점은 예술을 세계에 대한 모방의 양식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플라톤에서 시작되어 현대의 예술론까지 이어진다. 모방적 관점은 공통적으로 예술을 자연과 세계에 대한 모사(模寫)로 이해하는데, 이때 예술작품은 실재를 재현(representation)하는 일종의 거울로 비유된다. 그것은 말하자면, 세계를 다시(re-) 보여주기(-presentation)이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과 실재하는 세계가 결국 예술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지만, 예술이 세계의 모방이면서 동시에 그 단순한 모사를 넘어서고자 하는 양식이라는 사실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실용적(pragmatic)관점은 예술을 그 효용의 측면에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요컨대 이것은, 무언가 현실적인 쓸모가 있기 때문에 예술이 존재한다는 입장으로서 그 효용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양한 갈래가 있다. 카타르시스 이론도 크게 보아 예술의 효용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심리적 효용에 주목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의 교훈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역사 속에서 언제나 존재해 왔다. 예술을 통해 종교적, 윤리적 교화를 이루고자 했던 중세 초기의 미학이나, 대중에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단일한 이념을 고취시키는데 예술을 이용하고자 했던 나치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미학 등도 이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일정한 목적을 위한 도구로 예술의 의미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표현적(expressive)관점은 예술이 어떤 쓸모를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표현 욕망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낭만주의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생각으로서, 이 관점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강조하고 본능적인 표현의 충동을 중시한다. 이러한 관점을 예술가의 개인적 체험이나 직관과 관련하여 예술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예술의 기능과 역할을 축소시킬 위험도 있다.

형식적(formal)관점은 예술을 다른 외부적 요소들과 독립시켜 그 자체의 내재적 질서에 주목하는 것이다. 형식적 관점의 원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라고 할 수 있다. '시학'은 그리스의 비극이 내적으로 어떤 형식과 구조를 지니고 있는지를 설명한 책인데, 이러한 관점은 러시아 형식주의 등 현대의 이론들에까지 전승된다. 형식적 관점은 한편으로, 예술의 사회적 의미 등 다양한 요소들을 예술 작품에서 배제해 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는 예술적 인식의 의미를 특히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기도 한다. 이 논의들은 관습적, 일상적 인식과 예술적 인식의 차이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예술의 의미에 접근한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브레히트와 쉬글로프스키가 각각 연극과 소설에 대해 전개하고 있는 논의는 '낯설게 하기'라는 용어로 집약될 수 있다. 브레히트의 경우는 '소외 효과'라는 용어를 쓰고 있으나, 이 개념의 내포 역시 '낯설게 하기'라는 단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상에서 살펴 본 다양한 관점들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면서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를 맺는다. 어느 하나의 관점으로만 예술을 정의하는 것은 결코 예술의 전체적 면모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은 일상화, 자동화, 관습화되어 호수처럼 변화가 없는 우리의 인식에 돌을 던지는 행위이다. 던져진 돌이 일으키는 파문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예술은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 그리고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방식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예술적 인식은 다른 삶의 양식을 꿈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일상화의 도취에서 우리를 깨어 있도록 돕는다. 브레히트와 쉬클로프스키가 궁극적으로 강조하고자 했던 것도 이러한 요소였다.

그러나 현대의 문화적 상황은 이러한 예술적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즐거움과 예술적 인식은 문화 예술의 중요한 기능이지만, 우리 시대는 즐거움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이 말이 모든 할리우드 영화나 대중 가요가 나쁘다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문화를 지배하는 한 시대의 논리인 것이다. 예를 들어,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말하는 구호는 드높지만, 여기에서 문화라는 것이 진정한 문화 예술적 기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업주의의 논리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쉬운 예로, '쥐라기 공원'이 벌어들인 수익이 한국의 연간 자동차 수출 이익과 맞먹는다는 등의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문화의 상업화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화가 상업주의의 논리에 종속되어 가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돈을 벌기 위해 양산하는 대중 문화는, 대중의 사유를 주체적으로 만들거나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기보다는 대중의 취미와 기호에 영합하여, 현실의 문제를 은폐하고 자기 인식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문화적 다양성을 긍정적인 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예술적 인식의 진정한 기능에 대한 우리 자신의 자각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기가 진정한 문화의 세기라면, 그것은 문화 생산자와 수용자가 일상의 도취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세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시대를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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