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방이 무너진다-수도권 비대화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해 있다. 서울의 문제는 곧 대한민국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말 4천600여만명인 우리나라 총인구 가운데 46.1%인 2천100만명이 수도권에 집중해 있고 이중 서울시에만 1천32만여명이 살고 있다. 수도권은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하지만 제조업체의 54%, 공공기관의 85%가 몰려 있다. 우리 수도권의 인구집중도는 파리, 런던, 도쿄 등 선진국의 대도시에 비해 과다하게 높다.

그로인해 교통, 주택문제, 환경오염, 지가상승과 물류비용 증가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집중에 대한 각종 억제책은 용인과 김포 등 수도권 위성 도시의 '난개발' 문제로 불똥이 튀고 있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서울이 폭발, '서울공화국'이 무너질 것이라는 역설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의 수도권 과밀화 억제대책에도 지난 85년 이후 수도권의 인구 구성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내놓은 90년 이후 권역별 순이동(전입-전출)추이를 보더라도 수도권은 지속적인 인구유입권역이다. 유입규모가 98년까지는 둔화 추세였지만 IMF이후인 99년 큰 폭으로 증가했다. IMF이후 서울과 지방간의 경제력 격차가 심화되면서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영남권에서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출은 늘어났다. 특히 호남지역의 인구비중은 지난 60년 전국의 23.8%에 이르렀으나 98년에는 11.7%로 절반이하로 감소했다.

지역간 경제력지수의 하나인 '지역내 총생산'(GRDP)규모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더욱 집중되고 있다.

지난 98년도 우리나라의 지역내 총생산액 중 수도권(서울과 경기, 인천)의 지역내 총생산 구성비는 46.4%로 97년도의 45.7%에 비해 0.7%가 증가했다. 반면 대구(-7.7%)와 경북(-0.3%)을 비롯한 비수도권 지역의 비중은 크게 감소했다

서울에 돈이 몰리는 것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에서도 확연하다. 지난 99년 90.2%의 재정자립도를 보인 서울시는 1조5천억원의 지방채무를 지고 있어 75.5%의 낮은 재정자립도를 보이고 있는 대구시의 부채 1조9천100억원보다도 적다. 경북도와 같은 지방자치단체는 평균 35%대의 재정자립도를 기록, 중앙정부의 지원없이는 파산에 이를 지경이다.

이같은 서울과 수도권의 비대화는 국토의 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다른 '지역감정'을 유발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구와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은 수도권 이외 지방의 희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에 대한 '차별'이니 '역차별'이니 하는 아우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수도권 집중 억제책은 갈팡질팡하면서 별다른 효과를 보지못하고 있다.

수도권의 인구집중 억제를 위해 대학과 공장설립 등을 규제하던 정부는 IMF가 터지자 외국인 투자촉진과 경제회복을 명분으로 수도권에 20개 업종의 첨단공장 신·증설을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정부는 또 국제전문회의 시설과 소프트웨어 진흥구역 내의 시설에 대한 과밀부담금 제외, 자연보전권역내 대규모 관광단지의 한시적 허용, 구조 조정에 따른 공장 통·폐합시 총량 규제 배제 및 절차의 간소화 등도 검토하고 있다. '수도권 정비계획법'을 폐지하는 대신 '수도권발전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대응은 단기적인 경제회복이나 국가경쟁력 복원 측면에서 타당하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수도권내 첨단산업과 대규모 관광종합 휴양업의 허용은 수도권 집중현상을 다시 부추기고 있고 결과적으로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지역균형개발이라는 대원칙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 예가 지난 19일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열린 관광진흥확대회의다. 회의에서는 2001년까지 수도권에 30만평 규모의 종합숙박단지를 건설하기로 했다. 수도권거대화에 따른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토개발 전문가들은 언젠가는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U-턴현상이 빚어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정부산하기관인 '국토연구원'도 국토균형개발 방안으로 지난 7월초 일부 중앙부처의 지방거점도시 이전방안을 제시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는 평가에 그쳤다. 국토연구원은 지난 5일 '화해·협력 신시대의 지역통합방안'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중앙행정부처의 수도권 집중이 국토불균형 문제의 핵심이라며 건교부와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 농림부, 산자부 등 7개 부처를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대전 등 7대 지방 거점도시로 분산·이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건교부와 행자부측은 "부처간의 업무협조 등 제반 문제를 감안할 경우 현실성이 없는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며 일축, 이 방안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미 철도청과 중소기업청 등 청(廳) 단위의 정부기관들이 대전에 정부청사를 마련, 입주했지만 업무효율성이 떨어지는 등 중앙부처의 지방분산을 통한 지방거점도시 육성은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정부는 국토연구원을 통해 마련한 제4차 국토개발계획을 시행하고 있지만 국토의 균형개발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정부는 수도권의 과밀해소와 지방성장기반을 위한 제도개선, 국토의 난개발방지 등 여러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서울 중심의 국토개발계획을 전면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는 여전히 부족하거나 없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다.

徐明秀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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