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이재길(계명대 교수·사진디지안)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어본 것은 중학교 3학년때였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한 대의 카메라는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신기하기만 했다. 사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카메라를 목에 걸고 골목 안을 기웃거리며 대구 바닥을 얼쩡대곤 했다. 대구의 60년대는 전국 최고의 사진 메카였고 나는 자연스럽게 사진과 친해질 수 있었다. 시내 중심가의 화랑들을 돌아다니며 사진전을 감상하곤 했다. 카메라를 얻은지 두 달도 못가서 우리집 좁은 벽장은 중고 확대기와 현상탱크 따위로 가득찬 간이 현상소로 바뀌어 버렸다.

오렌지색 안전등 불빛 아래서 가슴 두근거리며 뽑은 나의 첫 작품. 동네 개구장이 녀석들의 얼굴이 현상액 속에서 서서히 모습이 나타날 때의 그 뿌듯한 감동이란··. 나는 그것이 화학약품의 작용이라는 사실을 아무래도 믿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진에 신들린 카메라소년이 돼갔다. 고등학교 3학년때, 남들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얼굴이 시든 개나리꽃처럼 누렇게 떠있을때 나는 첫 개인전 준비로 들떠 얼굴이 갓 피어난 복숭아꽃(?)이었다.

어언 사진인생 30여년이 됐지만 아직껏 소년시절과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내가 만든 첫 번째 사진에서 느꼈던 것처럼, 사진이란 결코 사진기나 화학약품과 같은 과학기술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사진을 만들어 내는 또하나의 불가사의한 힘의 정체는 바로 사진가의 '세계를 보는 눈'이고 감수성이고 표현해 내는 솜씨다. '무엇을 찍는가'도 중요하지만 '왜 그것을 찍어야 하는가'는 더 중요한 일이다.

이제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니 어린 시절 사진에 대해 느꼈던 순수한 감흥이 새롭게 떠오른다. 카메라가 필수품이 된 요즘, 기교·기술로서만의 사진이 아니라 찍는 이의 마음과 감수성을 소중히 여기는 풍토가 자리잡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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