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태조왕건의 궁예 심복역 김갑수

"어차피 이 기회에 북원부인을 없애야만 합니다"굵고 나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 미소를 머금은 듯한 온화한 표정, 그러나 그가 내뱉는 말은 섬뜩하고 차갑다.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의 심복 종간 역을 맡은 김갑수의 연기가 은은히 빛을 발하고 있다. 그가 맡은 종간은 늘 미소로 사람을 대할 정도로 예의가 바르지만 주어진 일에 실수나 과오를 범할 경우에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 냉정한 인물. 궁예의 절대적 신임을 얻어 왕건을 제거하는 일에 나서지만 결국 왕건에게 처형당하는 비운의 책략가이다.

지난 77년 연극 무대에 뛰어든 그는 다양한 작품 경력을 거쳐 영화 '태백산맥'의 염상구 역으로 주목받으며 양지에 들어섰다. 이 영화에서 비열하고 악랄한 건달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대종상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자상 등 단 하나의 배역으로 주요 상을 휩쓸었으며, '금홍아 금홍아' '지독한 사랑'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등 3편의 영화에 잇따라 주역을 맡았다.

방송가에서 그는 '숫기없는 연기자'로 알려져 있다. 먼저 나서서 배역을 달라고 해 본 적이 거의 없으며, 그 자신도 스스로를 '연기자가 되기엔 적합치 않은 성격'을 가진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신 그는 담백하고 진솔한 성격으로 겸손하게 사람들을 대해 소박한 인간미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덕스럽고 까탈스러운 풍토에서 선천적 '끼'를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부단하고 성실한 노력을 기울여 오늘날의 그를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연기는 사실적으로 와 닿는다. 사물 너머를 응시하는 듯한 깊은 시선과 적당히 주름진 얼굴로 조용히 움직이고 말하는 '종간'은 원대한 야망과 권모술수, 냉정함으로 한 시대를 바꾼 인물로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金知奭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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