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국인 근로자-필리핀 산업 연수생 아이들린

낯선 얼굴, 살점을 뜯어내고야 말겠다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는 차가운 쇳덩이, 도무지 발음할 수 없는 말 '앙영하세요?'

대부분의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은 처음 맞닥뜨린 이국생활에 금세 주눅들고 만다. 아이들린(31). 농업국 필리핀 출신인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업화된 한국, 기계 앞에서 일하게 될 줄은 알았지만 중학교 교사 출신인 그녀가 막상 거대한 자수기 앞에 앉았을 땐 서글펐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서울의 취업 담당자에게 무수히 하소연도 했지만 한참을 에돌아 그녀에게 온 대답은 '석달만 참으면 익숙해진다'였다.

한국 생활 2년 6개월. 괴물의 울부짖음 같았던 자수기 소리도 이제 아이들의 잡담마냥 정겹다. 민무늬 베에다 꽃나비를 수놓는 일도 내 일처럼 느껴진다. 하루 12시간 고된 일을 해야 하지만 퇴근 후에 그녀에게는 또 다른 일이 있다. 그녀와 같은 외국인 근로자의 넋두리를 귀담아 들어주고 꼼꼼히 위로하는 일.

아이들을 가르치듯 산업 연수생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들을 위로하노라면 그녀 자신도 적지않은 위안을 얻는다. 휴일엔 필리핀 전통 음식을 만들어 향수를 달래주고 땀흘리며 농구를 즐기는 동료들을 찾아 열심히 응원하는 일도 빼먹지 않는다.

능통한 영어 실력으로 영어에 익숙치 못한 동료들을 대신해 권리를 찾아주는 일도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어깨에 얹혀졌다.

아이들린. 그녀는 대구에 거주하는 필리핀인들의 대모다. 누구나 아픈 곳을 들이밀며 '호오' 해달라고 어린아이처럼 조른다. 그녀에게 휴대폰은 필수다. 언제나 귀를 열어 놓아야 하기 때문. 그녀를 찾는 무수히 많은 상담 전화가 인터뷰를 듬성 듬성 잘라 버렸다.

曺斗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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