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히말라야 14개봉 오나등 엄홍길

세계 산악인의 꿈인 히말라야 8천m 이상 고봉 14개를 모두 오른 엄홍길(40)은 고상돈, 허영호의 맥을 잇는 한국 산악계 제3세대 간판이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고상돈이 한국 산악을 세계에 소개한 개척자고 허영호가 한국 산악인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면 엄홍길은 세계 최정상급 산악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엄홍길은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성장한 타고난 산꾼.

1960년생인 엄홍길은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도봉산 국립공원 골짜기에서 자라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늘 도봉산을 오르며 살았다.

168㎝-60㎏ 안팎의 자그만한 체격에도 강인한 정신력과 지칠줄 모르는 체력은 바로 이때부터 다져졌다.

엄홍길이 히말라야의 사나이로 성장하는데 보약이 된 것은 양주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입대한 해군 생활이었다.

남다른 체력을 내세워 최정예 부대인 해군수중파괴타격대(UDT)에 입대한 엄홍길은 산악인으로서의 필수 조건이 엄청난 폐활량을 키웠다.

군생활 때 다른 대원들은 고작 1분 안팎을 버티기 일쑤이던 잠수훈련에서 엄홍길은 2분 가량을 물속에 머물다 나오는 일이 잦았다.

산악인이 된 뒤에도 엄홍길은 마라톤과 수영, 잠수 등으로 체력과 정신력을 가다듬어 왔다.

군에서 제대한 뒤 전문 산악인으로 나선 엄홍길은 25세가 된 85년 에베레스트원정에 오르면서 히말라야 도전사를 시작했다.

첫 도전은 7천500m에서 돌아서며 실패로 끝났고 86년 한차례 더 고배를 마신뒤 88년 마침내 세계 최고봉에 오르면서 엄홍길의 히말라야 정복은 급물살을 탔다.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낭가파르밧 원정 때는 동상에 걸린 발가락 피부 이식 수술을 받기도 했고 함께 동반했던 셰르파가 등반 도중 사망한 사고는 부지기수.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작년 안나푸르나 원정 때 동반했던 여성 산악인 지현옥씨가 추락사한 일이다.

작년 캉첸중가 원정 때 눈사태로 동행했던 대원 1명과 KBS 현명근기자가 숨진 뒤에도 산행을 강행했으나 결국 정상 정복에 실패하고 귀국했을 때도 산사나이 엄홍길은 눈물을 삼켰다.

12년간 히말라야에서 살다시피한 엄홍길은 97년 스포츠센터 수영장에서 만난 이순래(30)씨와 결혼, 딸 지은(4)양과 아들 선식(2)군 등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 됐지만 산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엄홍길이 14개봉 완등의 위업을 이룬 31일은 작년 67세로 타계한 부친 엄금세씨의 첫번째 기일.

'산사나이' 엄홍길의 빛나는 위업에는 평생을 도봉산 기슭에서 아들에게 산의 정기를 불어넣으며 키운 부친 영령의 보살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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