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부들 이색취미 는다

"처음엔 밤새 뭐 하는 짓인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낚시 찌만 움직여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집에서 스트레스 받았던 일도 잊을 수 있어 좋아요"

낚싯대를 잡은지 10년 된 김영순(31·대구 대명동)씨. 낚시 얘기에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밤 낚시를 즐기는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 남들은 여자가, 그것도 애 엄마가 웬 낚시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녀는 "고기 잡는 낙에 산다"고 할 정도로 낚시에 푹 빠져있다.

별난(?) 취미를 가진 주부들이 늘고 있다. 낚시, 암벽·고산 등반 등 남자들만의 영역으로 인식돼온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생활이 아주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남편과 비슷한 취미를 즐기다 보니 부부간 정도 남다르다고 자랑한다.

김영순씨가 낚시에 빠져들게 된 것도 남편 이범석(31)씨 때문이다. 연애시절부터 유달리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다니다, 이젠 낚시터에서 남편과 서로 아이 보라고 싸울 정도로 낚시가 재미있어져 버렸다.

김씨는 참붕어만 잡는다. 3년전 영천 대내지에서 잡은 길이 34㎝짜리 참붕어는 어탁 액자를 만들어 집에 걸어두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참붕어는 지금껏 한솥도 넘게 잡았지만 모두 살려주었다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있다 보면 발 밑으로 뱀이 지나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그녀. 첫째 중엽이(6)를 배고서도 밤 낚시를 하다 미끄러져 안동댐에 빠질 뻔한 적도 있었다. 둘째 승엽이(3)가 어린 탓에 요즘은 가까운 유료 낚시터에 가는게 고작이지만, 50, 60대가 될 때까지 남편과 함께 낚시를 즐기고 싶다고 했다.

결혼 6년째로 접어든 주부 김영희(30·대구 대봉동)씨. 아들 태영이(4)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다 지난해 사표를 내고 암벽 등반을 시작했다.

"미혼시절에는 활발하게 지낸 편이었는데 결혼하고 나니 생활이 무료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어요"

태영이를 데리고 할 만한 운동으로 찾은 것이 스포츠 클라이밍. 미혼시절 등산을 워낙 좋아했던데다 남편 김재창(33)씨가 암벽 등반하는 모습을 많이 본 터라 운동삼아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암벽 등반은 이제 본업이 돼버렸다. 한가지 일에 파고 드는 성격과 재능이 돋보여 전문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로 뛰게 된 것. 엄마가 등반 연습하는 걸 보고 자란 태영이도, 일부러 시키지 않았는데도 암벽 등반을 제법 한다.

"기본 수칙만 잘 지키면 생각만큼 위험하진 않아요. 안전한 실내 인공 암장에서 하는 스포츠 클라이밍을 다이어트 운동으로 하는 주부들도 늘고 있어요"

대구클라이밍센터 총무 겸 트레이너로 활동 중인 김씨는 내년엔 대학에 입학, 스포츠 생리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등반 여행도 계획하는 등 훌륭한 코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결혼한 주부 김순주(32·대구 송현동)씨의 취미는 남자도 하기 힘든 고산 등반이다. 1993년 한국 최초의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로 8천848m 정상에 올랐던 그녀는 97년 북미 최고봉 맥킨리(6천194m),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천894m) 등반에도 성공한 맹렬 산악인. 남편 하찬수(33)씨도 내달 에베레스트 등정에 오르는 등 부부가 함께 고산 등반을 취미로 삼고 있다.

결혼한 뒤 생후 8개월 된 영웅이를 키우느라 남편만 고산으로 떠나보냈다는 그녀는 올 겨울에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6천959m)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유럽·남극 등 7대륙 최고봉을 오르는게 꿈이라고.

"결혼해 아이가 생기고 나니 모든게 달라졌어요. 미혼 때는 훌쩍 떠나면 됐지만, 이제는 책임질 부분이 많아져 좀더 체계적으로 알찬 등반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얀 눈으로 덮인 산 위에 오르면 행복감을 느낀다는 그녀는, "늙을 때까지 계속 산에 오르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金英修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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