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에세이-오마니께 보내는 편지

-109세 된 어머니를 곧 만나게 될 부산의 72세 아들 장이윤씨를 생각합니다-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 쪽에 모리를 두고 죽는다고 했습니다. 눈이 온 다음날 발자국은 어김없이 대문을 나가 임진강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리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저는 고향에 갑니다. 통일이 되어야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북쪽땅의 바로 어머니를 뵙게 되는 것입니다. 109세나 되신 어머니는 막내인 저를 만나보기 위해 이제까지 푸른 한으로 살아 계실 수 있었던 게지요. 와락 달려가 껴안고 싶은 마음에 한복을 준비했습니다. 분홍 저고리, 자주색 치마, 하얀 코고무신입니다. 제가 준비한 이 어머니옷은 바로 저 자신입니다. 어머니의 옷이 되어 어머니의 살 곁에,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고 싶은 제 마음입니다.

어머님 그립습니다

어머니, 오는 광복절이면 50년만에 저는 고향땅을 밟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며 죽어갔는지 모릅니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의 산과 강은 개발로 황폐해지거나 오염되지는 않았겠지요. 북한이 자연이나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곧 경의선이 뚫린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내 고향 땅에도 자유로이 갈 수 있는 세상이 온다는 실감도 나지만, 한편 두렵기도 합니다. 경제를 일으킨다면서 남쪽처럼 성급하게 국토를 훼손시킬까 봐서입니다.

어머니, 요즘 아들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에 잘 주무시지도 못하시지요. 행여나 미국이 방해해서 못 만나게 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은 하지 않겠지요. 우리는 남과 북이 주체가 되어 통일로 가는 큰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세계 강대국들이 우리를 주시하는 마당에 과거의 헛된 선전에 얽매여 있어도 안될 뿐더러 좀더 냉철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88올림픽때 남한이 미국선수가 아닌 남의 나라 선수를 응원하는 감정적인 태도는 극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

어머니, 그곳 북한은 통일이 되면 잘 살게 된다고 들떠있다는데 사실인지요?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통일은 느리고 힘들게 올 것입니다. 이곳 남한에서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변화에 혼란을 느끼고 우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이가 많습니다. 이 우려의 목소리는, 통일이 낭만이 아니고 현실의 가장 중요한 일임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북한 당국도, 남쪽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바다 건너의 '김정일을 위한 회담'이라는 표현도 양쪽이 생각해가며 일을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서로의 소중함 깨달아야

어머니, 우리 민족에게는 전통적인 유교의 덕목이 있습니다.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의를 통한 교류와 이해가 바탕이 되면, 분단 55년의 많은 격차와 이질감을 극복하고 관용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특히 정보화 사회에 사는 남쪽의 젊은이한테는 이 유교 정신의 부활이 매우 시급합니다. 그래야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탈출하여 인간적 유대를 중시하게 될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래야 민족이 중요한 줄도, 통일이 중요한 줄도 알게 될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통일이 서서히 진행되어왔고 이제는 약간의 속도까지 실리고 있습니다. 아주 소중한때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중하는 마음가짐으로 무엇을 해야할까 생각해야겠지요.

어머니, 109세된 어머니께 쓰는 편지인데도 걱정이 앞서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부디 다시 만날 그날까지 건강하십시오.

대건고 교사·대구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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