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IMF그늘 속 '눈물겨운 생존'

"2년여 동안 상여금 한 푼 못받았습니다. 직장 생활 10년만에 남은 것은 은행빚 1천만원이더군요"

화의상태인 대구의 한 업체 과장 ㄱ(37)씨는 회사가 어려워진 후 되레 자녀들의 학원비 등 '돈 쓸 일'은 늘어 생활이 버겁다. 그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퇴근하면 곧장 귀가하는 습관이 생겼다.

ㄱ씨는 "같이 근무하는 후배는 결혼도 못하고 있어 더 안쓰럽다"며 "장래가 불투명한 업체에 다니는 남자와 누가 결혼을 하려고 하겠느냐"고 우울해 했다.

정부와 경제연구소 등은 경기호황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지역의 워크아웃, 법정관리, 화의 진행 등 이른바 '부실기업'의 직장인들은 IMF(국제통화 기금)구제금융사태 이후 2~3년 동안 상대적 박탈감 속에 혹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원 수가 줄면서 남은 직원들의 업무량도 크게 늘었다. 어떤 업체는 입사 5년차 미만의 직원들이 잇따라 회사를 떠나 과장 등 중간간부들이 차(茶)를 나르거나 복사 업무까지 하고 있다.

이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앞날에 대한 불안감. 특히 워크아웃 등의 부실업체가 선별 정리될 것이란 정부 발표가 잇따르자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워크아웃 중인 중견 건설업체 대리 ㅇ(32)씨는 "2년 이상 상여금을 못 받은 것은 물론 월급도 제 때 나오지 않아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얻어 쓰는 형편"이라며 "부실기업 정리가 여론의 도마에 오를 때마다 일찍 회사를 떠나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워크아웃 기업의 직장인들은 채권금융단에서 파견된 관리단으로부터 자존심 상하는 일을 겪는 경우도 많다.

또다른 건설업체 간부 ㄱ(40)씨는 "며칠 동안 밤잠 설치며 기안한 사업계획서를 은행에서 나온 담당 관리역이 검토도 하지 않고 묵살했다"며 "자금지출 결제를 할 때마다 마치 죄인 취급을 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털어놨다.

협력업체의 태도도 달라졌다. 과거 일감을 얻기 위해 머리를 숙이며 들어오던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이젠 현금을 주지 않으면 일을 맡지 않겠다고 외면하기 일쑤. 워크아웃 업체의 임원 ㅇ(47)씨는 "기업주가 직원들에게 사기를 잃지 말고 회사 정상화에 힘을 쏟을 것을 독려하지만 직원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지 않는 한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金敎榮기자 kimky@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