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고강도.전방위 압박으로 코너에 몰린 현대가 어떤 자구안을 내놓으면서 돌파구를 모색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강경한 정부와 어정쩡한 현대=금융감독위원회는 5일 현대가 보여준 자구계획에 대해 "알맹이가 없다"며 퇴짜를 놓았다.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한 알짜자산 매각계획이 없고 '문제 경영진' 퇴진에 대해서도 명확한 언급없이 대충 얼버무렸다는것이 퇴짜를 놓은 가장 큰 이유다. 특히 정부에서는 개각 분위기에 편승, '부실자구책'을 계속 내밀 경우에는 방치하지 않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분위기까지 감지돼 현대의 속을 태우게 하고 있다.
현대는 휴일인 6일에도 대책 마련에 여념이 없는 표정이다. 또 정부의 초강공에대해 "너무 하는 게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내는가 하면 "'현대'다운 안이 나올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게다가 "정부의 진의를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며 어정쩡한 태도까지 보였다.
현대의 이런 태도는 현대투신 사태,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 등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정부 및 채권단과 협상을 거치면서 노회한 '선수'가 됐다는 느낌마저 준다. 히든카드는 남겨둔 채 시간을 끌면서 상대방의 힘을 빼는 작전을 구사하고있다는 인상도 준다. 가신퇴진의 압력을 받던 지난 5월말에도 줄다리기 끝에 '3부자 퇴진'이란 카드로 대반전을 꾀했고 자구책의 수위도 협상과정에서 수차례에 걸쳐 높여 결국 5조9천억원이 됐다. 이 때문에 또 한번의 막판 '깜짝쇼'를 예상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정부의 압박강도와 조임수가 이번에는 예사롭지 않다. 현대도 이런 분위기를 직감하고 있지만 가신청산 등 돈만으로 떼울 수 없는 요구사항 탓에 속을 태우고 있는 것 같다.
현대는 보완한 자구계획을 마련한 뒤 정몽헌(MH) 현대아산 이사회의장의 '첨삭'과 정부와의 의견조율을 거쳐 발표하는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현대차 계열분리=정부는 정주영 전명예회장의 현대차 지분 9.1% 가운데 6.1% 이상을 매각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현대도 이에대해 채권단에 보여준 자구책에 수용할 만한 계열분리방안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함구했다.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도 5일 "현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동차 계열분리안을 검토중이니 늦어도 7일까지 결론이 날 것"이라고 밝혀 계열분리의 '큰 그림'에는 의견 접근을 본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문제는 구체적인 실천방법. 한때 검토된 '우선주 전환 방식'이 다시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상법상 불가능한 만큼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공익재단 출연방안'에대해서는 정부가 거부감을 표시했다. 반면 '채권단 위임 방안'과 '제3자 매각방안'등은 아직 설득력을 잃지 않고 있다. 우선 제3자 매각방안은 지분 6.1% 이상을 나눠서 팔더라도 적당한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성우, 한라, 금강 등 이미 분리된 위성그룹에 나눠 판다는 방안도 나왔으나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방법 중 하나로 현대차와 10% 자본제휴를 진행중인 다임러 크라이슬러에 전량을 매각하는 '빅딜'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정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
'채권단 위임안'은 매각을 전제로 하는 경우와 의결권 포기각서만 제출하는 경우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방침이 완전분리를 목표로 하는 만큼 단계적 매각을 전제로 채권단에 주식을 위임하되 매각 때까지 잔여지분에 대한 의결권포기 각서를 받는 혼합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채권단에 위임한 뒤 일정 시한까지 매각을 못할 경우 처분권까지 넘기는 '백지위임' 방안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재산권을 침해하는 모양새로 비칠 위험을 경계하고 있다. 현대 관계자는 "아직까지 확정된 것이 없으며 MH가 돌아와야 계열분리안이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구계획의 수위= 금감위는 현대가 1차로 제시한 자구안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 것 같다. 현대는 1차로 제시한 유동성 확보 방안에 이미 수차례 발표한 자구계획을 보다 구체화하고 이행시기를 앞당기는 내용을 담았지만 추가 유동성 확보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특히 현대건설의 자금난 완전해소를 위해 왕회장과 MH가 보유한 지분 다량을 처분할 것을 요구하는 눈치다. 이는 곧 계열주(동일인)의 사재출연을 의미하는 만큼 현대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현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오너가 지금과 같은 유동성 위기때 사재를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버티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돈 되는 계열사매각 요구설에 대해서는 "그런 적도 없고 그럴 계획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는 또 추가 자구책으로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 6.93%와 현대상선 지분 23.86% 중 일부라도 매각할 것을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대중공업의 계열분리와도 연관된 문제. 이때문에 정부는 현대상선이 갖고 있는 현대중공업 지분 12.46%도 3% 미만으로 낮출 것을 함께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MH가 갖고 있는 현대상선(4.9%)이나 현대전자(1.7%) 지분을 정리하고 현대건설.상선이 보유한 중공업 지분 등을 처분할 경우 MH-현대건설-현대상선-현대중공업 등으로 얽혀 있는 지배구조의 틀과 계열사간의 끈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현대 관계자는 "2003년 분리예정인 현대중공업의 경우 그룹의 지주회사 같은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하게 얽힌 지분과 빚보증 문제를 해결하고 당장 올해 안에 분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문제경영진 퇴진과 지배구조 개선=현대는 일단 사외이사 확충을 통한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과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 정착을 자구안에 써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매번 자구계획을 낼 때마다 들어가던 단골 메뉴다. 정부는 현대가 3부자퇴진약속에도 불구, 바뀐 것이 별로 없다고 보는 한편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저해하는 원인중 하나로 가신그룹을 지목하고 있다. 금감위나 채권단의 입장은 '현대건설의 유동성 문제를 일으킨 책임자에게 어떻게 자금지원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현대는 그러나 "주채권은행이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문제 경영진 퇴진 문제를 애써 외면중이다. 현대 관계자는 "더 나은 자구책을 위한 압박용일 뿐 본질은 아닐 것"이라며 "문제 경영진 퇴진은 본인 또는 이사회의 결정사항"이라며 못박았다. 가신 퇴진론 얘기만 나오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겨냥하며 다시 '3부자 퇴진론'을 부추기는 작전을 쓰고 있다. 물론 현대차는 "몽구회장은 퇴진약속을 한 적이 없고 오히려 이사회의 재신임까지 받았다"면서 "이번 사안의 본질은 자동차의 계열분리와 부실경영의 책임을 묻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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