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구요? 맞습니다. 미쳤죠.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죠"'벽돌왕' 한삼화(韓三和·56·〈주〉삼한 대표)씨. 벽돌 한 장에 인생을 건 대구의 신지식인. '미치지 않고는 한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인물이다.
흙과 물·불, 그리고 사람의 손길.
태초부터 있어온 자연 그대로만을 이용해 만드는 벽돌. 190×90×57mm 크기, 붉은 단색. 이 벽돌 한 장으로 세계 최고가 된 사나이다.
이제까지 그가 만든 벽돌은 7억8천400만 장. 서울~부산을 149회나 왕복할 수 있으며, 달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의 29배 길이에 해당한다. 연간 매출 87억원. 지난해 6월 중소기업청은 그를 '신지식인'으로 선정했고, 9월에는 '이달의 중소기업인'으로 뽑았다.
지난 4일 대구시 동구 신천동에 있는 (주)삼한 본사를 찾았다. 벽돌회사답게 건물은 거대한 하나의 벽돌덩어리. 뿐만 아니다. 내부도 벽돌로 인테리어돼 있고, 발길이 닿는데 마다 벽돌이 쌓여있다. 통상 붉은 벽돌만 생각했는데, 까만색, 하얀색에 매끄러운 놈, 둔탁한 놈…, 종류도 다양하다.
'벽돌왕'이라 거친 인상을 예상했으나 빗나갔다. 선이 고운 말끔한 인상에 밝은 얼굴이 아이언 골프채처럼 매끄럽다.
만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벽돌의 장점을 늘어놓는다. "벽돌만큼 자연친화적인 건축자재가 없습니다""강도와 내습, 방한에 탁월하죠""인간은 흙과 살아야됩니다""뉴욕공항에서 내려다보면 도시 전체가 벽돌입니다"
그중 특히 벽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말은 "벽돌집에 들어가면 코가 확뚫린다"는 말이다. 벽돌이 가진 습도조절 능력에 대한 찬사다.
그가 벽돌에 인생을 걸게된 것은 지극히 평범하다. 어떻게 보면 뜬금없기도 하다. 그는 소위 '약쟁이'였다. 태반을 이용해 약품을 만드는 장기약품 대구·경북·부산 판매 총괄. 지난 76년 우연한 기회에 이탈리아·일본제 타일을 수입하는 일에 관여하면서 벽돌을 접하게 됐다.
"타일은 샤프하고 매끈하지만 벽돌은 투박하고 터프합니다" 그러나 수백 년을 이어오면서도 유행을 타지 않는 벽돌의 매력에 마음이 끌렸다. "한번 해 볼만한 사업이다"라는 느낌이 왔다. 78년부터 84년까지 약품 판매와 겸하면서 사업을 해 본 결과 성공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이때부터 그의 '흙 찾아 삼만리'가 시작된다. 벽돌의 생명은 좋은 흙이다. 논산, 제천, 천안, 음성, 괴산 등 안 가본 곳이 없다. 푸대에 야전삽, 장갑에 장화를 신은 모습으로 온 산을 헤맸다. 땅꾼, 간첩으로 오해받을 때도 많았다.
"좋은 흙은 손가락으로 비벼 보면 느낌이 옵니다. 퍼석한 황토는 십중팔구 벽돌에 크랙(균열)이 생기죠"
86년 당시 한보그룹이 소유하고 있던 경북 울진 후포에 있는 점토벽돌 공장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생산에 뛰어들었다. 90년엔 예천군 풍양에 제2공장까지 세웠다. 특히 예천 공장은 점토 흙의 천혜의 장소.
그러나 당시 국내에서 생산되는 벽돌에는 흠이 많았다. 갈라지고 터지고, 휘고, 크기가 들쭉날쭉한 것 등. 문제는 그런 흠투성이 벽돌들도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학창시절 '왜놈'이란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매사 철저했던 그의 성격상 지나칠 수 없는 일. 품질 향상에 사운을 걸었다. 예천공장에서 밤 12시 퇴근, 오전 7시 출근을 18개월 간 계속할 정도로 품질에 매달렸다. 벽돌 찍는 기계를 설치한 이탈리아 기술자를 2명이나 내보내기도 했다.
"벽돌에 10㎜ 오차가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벽돌 길이 190㎜의 현 KS규격 오차 허용은 ±5㎜ 삼한은 길이 너비 높이의 각 오차를 ±1㎜로 잡았다.
조금의 하자도 허용하지 않았다. KS규격품마저 불량품으로 처리하자 직원들 중에서 "팔 수 있는 것을 왜 버리느냐"는 볼멘 소리도 나왔다.
잘 얘기하던 한씨가 갑자기 기자의 손을 끌고 본사 마당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본사 건물을 지은 것은 지난 89년. "당시 시판된 최고 품질의 벽돌을 썼는데도 저렇습니다" 자세히 보니 건물에 성한 벽돌이 거의 없다. 그러나 삼한이 새로 개발한 벽돌로 쌓은 벽은 그렇지가 않았다.
150억 원을 들여 첨단 자동설비를 갖추고, 국내 최초로 ISO9002 인증도 획득했다. "투자 없이는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98년에는 국내 최초로 벽돌기술연구소까지 설립했다.
'최고'에 대한 집착은 경북골프협회 회장인 그의 골프에 대한 일화에도 묻어난다. 그는 지난 82년 골프에 입문, 불과 2년 반만에 싱글을 기록했다. 새벽 5시40분에 티업, 1시간 동안 9홀을 돌고 출근했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일본에서는 싱글치면 (골프에 미쳤다고)은행에서 돈도 안 빌려줄 정도라는데, 저는 벽돌과 골프에 동시에 미쳤던거죠"
그의 좌우명은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직원들에게)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하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하죠"
벽돌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얻고 있는만큼 그는 어떤 거대기업도 부럽지 않다고 했다. 풍양공장에는 국내외로부터 견학을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그의 자부심을 더하게 한다. 그는 다만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이탈리아의 모란도, JC스틸사 등 벽돌설비에 세계 최고인 회사처럼 가업으로 승계되길 바랐다. "글로, 자료로 표현할 수 없는 기술력을 가업을 통해 축적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벽돌을 한낱 건축재료가 아닌, 건축 예술품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는 세상을 열어갈 것"이라고 꿈을 밝혔다.
그의 벽돌은 낭만 가득한 서울 덕수궁 길을 비롯 대구 국채보상기념공원, 계명대 성서캠퍼스 건물 등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투박하지만 은은한 벽돌의 멋스러움. 세계 초일류 중소기업을 꿈꾸는 그의 삶도 아름다운 그 길처럼 은은한 향기를 뿜고 있다.
金重基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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