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어린이 마을. 어쩔 수 없이 친부모와 헤어지게 된 아이들이 새 엄마와 형제자매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복지시설. 대구·서울·순천 등에 각각 10∼15채 규모로 구성된 어린이 마을과 10여 개의 자매 시설이 있다.
각 가정마다 그림같이 아담한 집이 있고, 계절향이 물씬 풍기는 정원이 마련돼 있다. 다른 성을 가진 언니·누나·오빠·동생 등 6∼8명이 엄마와 한 가족이 된다. 부모를 잃은 친형제들은 함께 살도록 배려 받는다.
이 마을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독신으로 지내며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아이들을 보살핀다. 한 어머니가 평생 길러내는 아이는 보통 33명 내외.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된다.
서른 다섯 살.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아이를 예닐곱명이나 키우고 있다면 어떨까? 게다가 갓난 아기에서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참 이상한 풍경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대구 검사동 '한국 SOS 어린이 마을'에 가면 그런 엄마를 열 세 분이나 만날 수 있다. 엄마가 되기 전 과정인 '이모' 생활을 하는 예비엄마들도 적잖다.
양춘자. 35살. 파비올라 (세례명)씨도 그런 엄마들 중 한 사람이다. 3년간의 이모 생활을 끝내고 지난 6월 엄마가 됐다. 아직은 초보 엄마인 셈. 하지만 기저귀 갈기, 도시락 싸기, 우는 아이 달래기, 숙제 함께 하기 등 아이 키우는 솜씨는 수준급이다. 전북 익산의 한 고아원에서 5년 동안 보모 경험을 쌓은 것이 큰 밑천.
파비올라는 요즘 늦잠이 좀 늘었다. 신나는 방학에 들어간 아이들이 늦잠을 자는 통에 덩달아 복을 누리는 셈.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할 필요도, 도시락을 쌀 필요도 없어졌다.
그렇지만 그것도 아침 7시까지만이다. 아이들을 마냥 늘어지게 자도록 놔 둬서는 안될 일. 방학 중이지만 엄마는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아이들을 두들겨 깨운다. 잔소리가 심한 엄마와의 생활 몇달만에 아이들도 혼나지 않는 지혜를 터득했다. 엄마가 깨우면 재빨리 일어나 방청소 하고 아침식사 전에 깔끔하게 세수까지 마친다.
파비올라가 시설 아동을 보살피는 일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은 15년 전. 친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새 아버지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새 아버지는 어린 파비올라 형제들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아이들의 성씨를 그대로 이어주기 위해 어머니와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고, 형제들에게 아낌없는 사랑도 베풀어 줬다. "나도 저렇게 해서 은혜를 갚아야지…"
SOS마을 어머니들은 모두 요리사 수준의 요리 솜씨를 자랑한다. 변화무쌍한 아이들 입맛에 맞추기 위해 공부에 열 올린 덕분. 초보 엄마인 파비올라도 마찬가지. 어머니 방 책꽂이엔 '요리 대박사' '365일 식단' '별미 김치' 등 요리에 관한 책이 빼곡이 꽂혀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겐 맛있는 음식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나도 보통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편안감을 누리는 것. 사랑도 듬뿍, 매질도 듬뿍…. 그래서 파비올라에겐 보통 엄마들이 자기 자식과 맺는 것에 다르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무조건 잘해 주려고만 하면 도리어 아이를 망친다. 파비올라 는 부모가 매를 아끼면 자식이 몽둥이를 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철저하게 역할을 분담 시킨다. 고등학생인 순희는 하루 한 시간 이상 세살배기 현우를 보살펴야 한다. 초교 5학년인 명정이는 6살짜리 혜림이가 잘 노는지, 아프다고 징징대지는 않는지 늘 마음 써야 한다. 오랫동안 심장 판막증을 앓았고 수술을 받느라 몸이 무척 쇠약해져 있기 때문. 6살이지만 덩치는 18개월 된 현우와 엇비슷하다.
천진스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사회의 삐딱한 시선이다. 사춘기 아이라면 흔히 한두 번쯤 주먹다짐이나 남의 물건 훔치기 등 문제를 일으키지만, 감당해야 할 비난의 정도는 시설 아이들에게 특별히 가혹하다. 그래서 사춘기 아이를 가진 SOS마을 어머니들은 파출소나 학교에 불려 다니기 일쑤. 커가는 아이들이라 그러려니 하고 눈감아 주면 좋겠다.
파비올라는 자신이 '봉사한다' 든지, '아이들을 맡아 키운다'는 식으로는 절대 생각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 살아 가는 것 뿐이지요. 각자 자기 몫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겁니다"
이 마을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낳은 엄마라고 막무가내로 우기지도 않는다.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이들에게 중요하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따금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 아닌가? 낮잠에서 막 깬 세살짜리 현우,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다가도 이내 아장아장 엄마 품으로 파고들지만, 좀처럼 '엄마'라고는 부르지 못한다. 아무래도 아직 '엄마'는 무척 발음하기 힘든 낱말인가 보다. 曺斗鎭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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