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사파업-불거진 문제점

의사 파업이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다. 참아왔던 시민단체와 노동단체가 조직적인 파업종식 투쟁에 나서고, 폐·파업 의사에 대한 시민들의 감정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비현실적인 의보수가, 이로 인한 기형적인 의료구조 등 의료계의 일부 주장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도 있는 성격의 것임에도, 노동·시민단체는 의료비 인상 절대반대, 의료보험료 납부 거부 등 국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키로 했다.

의료계는 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됐을까? 의료계 내부의 비민주성, 잘못된 투쟁방식, 의사들의 기형적인 엘리트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국민의 공감을 얻는데 실패했다는 분석이 의료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의약분업은 의사들만의 문제?

언론사로 항의전화를 하는 의사들 중에는 "일반 국민들이 전문적인 의료문제를 어떻게 아느냐" "정부와 의사의 문제에 왜 시민단체가 나서고 신문이 국민과 의사들을 이간질 하느냐"는 식의 주장을 펴는 사람이 적잖다.

의사는 국민 건강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데도 언론이 이를 오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진료거부 조차 "정부가 잘못해 의사들이 진료하지 않는 것이니 이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의사들의 이같은 인식이 이번 문제를 일으킨 발단 중 하나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의약분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의보수가를 어떤 선에서 정할 것인가' 등의 결정은 의사가 아니라 어쩌면 시민들이 할 몫이라고 이들은 환기시켰다. 시민들은 한낱 의료 수혜자에 그치는게 아니라, 의료 소비자이자 의사들의 소득원인 의료보험료를 내는 의료의 한 주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를 내동댕이 치고 거리에 나선 의사들에 대해 노동·시민 단체들이 '의료비 인상 절대 반대' '의료보험료 납부거부' 투쟁에 나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얘기이다.

◇의식의 전근대성

이번 파업을 지내면서 적잖은 의사들은 "파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개인적 신념을 표시했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기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찍힌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이번 파업 사태 덕분에 모습을 보다 명확히 드러낸 우리나라 의료계의 후진성이다.

이달 초 동료의사들에게 집단폐업 자제 호소 성명서를 발표했던 인도주의 실천 의사 협의회(인의협) 홈페이지 게시판은 이 단체를 비난하는 익명의 욕설로 가득하다. "슈바이처·허준인양 흉내 내지말라" "당신들의 지긋지긋한 철학을 강의하지 말라" "당신들은 천당에 가시오. 꼭 그래서 다시는 이땅에 태어나지 마시오" 등 극단적인 표현을 동원해 인의협 의사들을 공격했다. 가장 많이 교육받은 집단인 의사 사회에도 합리적 대화와 토론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대목.

이런 상황은 대구지역 경우 더 심하다는 것이 일반적 지적이다. 거의 모든 의사들이 선후배로 묶여 있기 때문. 영남대·계명대·가톨릭대 등에도 의대가 있긴 하지만, 교수들은 거개 경북대 출신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 의사 집단의 전근대적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리베이트 수수, 탈세, 과잉 거품진료 등 의료계의 잘못된 관행을 스스로의 정화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투쟁 아닌 반성

의사들은 의권쟁취와 국민 건강권 수호를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민 건강권을 수호하겠다는 의료계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의료계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병의원에서 주사제를 과다하게 사용했다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다. 주사제는 먹는약 보다 5~40배까지 비싸다. 병의원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인 셈. 주사제 처방 빈도는 WHO 권장치인 17.2% 보다 3배 많은 56.6%에 이르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의사들은 약사를 항생제 오남용의 주범으로 공격하지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동네의원의 환자에 대한 항생체 처방 비율은 62.9%로 권장치(22.7%)의 3배나 된다. 이것을 의료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병의원에서 누려왔던 음성적 수입은 또 어떤가? 동네의원들은 약값 보다 훨씬 많은 약을 제약회사로부터 납품 받거나, 의료보험 약가보다 싼 값으로 약을 받아왔다. 중소 대형병원들은 약 채택 대가로 제약회사로부터 아주 오래 전부터 리베이트를 챙겨 왔었다.

의사들은 당초 의약분업 방향이 확정될 때는 조용히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해 11월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를 시행하면서 약값 거품을 제거해 이런 음성적 수입의 일부를 없애버리자 거리로 나섰었다.

◇버려야 할 엘리트의식

계명대 조병희 교수(의료사회학)는 "우리나라 의사들은 의사라는 직업적 자부심과 혈연적 집단의식의 복합체인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한다. 직업적 윤리가 자리 잡아야 할 자리에 '기형적 엘리트 의식'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엘리트 의식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에 대한 보답의식, 혹은 사회적 책무 의식과 함께하지 못하면 드디어 기형이 되는 것이다. 다 갖춰야 '오블리제 노블리스'에 이룰 수 있을 터이다.

지켜야 할 환자의 건강을 오히려 볼모로 삼는 의사들에게 시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해결되든, 노동·시민 단체는 의보수가 현실화 등에 대해 조직적인 저항운동을 펼칠 것이 분명하다.

의료는 의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문제다. 의료계만 나서서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국민과 의료계를 이간질 하는' 언론이라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를 탓해야 할때가 온 것이다. -李鍾均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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