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양 도자기의 신비를 넘어…

"황금 알을 낳는 백색 자기를 개발하라"

이 명제는 수세기 동안 유럽의 모든 왕들, 제후들, 상인들과 도공들의 꿈이자 목표였다. 하지만 유럽은 동양의 전유물인 도자기의 신비한 비밀을 밝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17~18세기 한세기 동안 물경 7천만점의 도자기가 유럽에 수입돼 왕과 귀족들의 재산이 사실상 거덜 날 지경이었다고 새뮤얼 존슨은 지적했다. 심지어 그는 중국을 "도자기를 앞세운 착취자들"이라고까지 비난했다. 왜 유럽은 이렇게 동양의 도자기에 눈독을 들인 것일까.

이같은 물음의 답을 김재규씨의 '유혹하는 유럽 도자기'(한길사 펴냄)에서 찾을 수 있다. 도자기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입문서로 저자 김씨는 유럽에서 활동중인 앤티크 딜러. 도자기의 용어에서부터 유래, 제조공법, 유럽 각국의 도자기 발달역사, 도자기 수집 방법 등 다양한 정보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도자기문화 자체만이 아니라 유럽과 동양의 당시 시대상을 통해 어떻게 도자기 문화가 태동, 발전, 전파되었는지를 문화사적으로 접근해 동서 문명교류사의 한 단면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이 백색자기를 굽는데 성공한 것은 1710년. 작센 공국의 제후 아우구스트공의 주도하에 독일 마이센의 연금술사 보트거와 티룬 하우젠이 투명한 소리를 내는 자기를 개발함으로써 유럽의 도자기 역사는 첫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18세기 당시 유럽은 그 어느 시기보다도 막강한 재력이 필요했고, 품질 좋은 도자기 개발은 곧 금맥을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횡재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전까지는 중국과 한국만이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기술을 획득, 명·청대의 내전 기간동안 유럽에 도자기를 수출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일본의 도자기가 유럽에 소개되자 제품의 인기는 최고를 기록했다. 중국 도자기의 디자인에 비해 너무나 혁신적인 것이 그 이유. 아무 것도 그려 넣지 않거나 시대를 앞선 독특한 표현 방법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유럽은 스테인드 글라스나 에나멜 공예를 통해 발색의 비법을 가지고 있어서 이 기술은 아시아보다 앞서 있었다. 이러한 바탕위에 동양 자기의 유약 비법을 빠르게 축적해 급성장할 수 있었다. 결국 영국의 본 차이나를 비롯 도자기 제조를 국영화한 독일, 프랑스 등이 가세해 3세기만에 종주국 중국으로 도자기를 역수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뿐만 아니라 20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유럽이 고급 브랜드를 완전히 장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徐琮澈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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