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부장=다시 광복절입니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은 또다른 상황을 먼저 생각케 합니다. 처음으로 남북 정상이 만났고, 가족 상봉단 교환도 오늘 재개됐지요.
북한이 태도를 바꾼 데는 국제적 힘의 변화가 작용했다는 관측이 많습니다만, 좀 더 멀리는 국제질서 역시 바뀌리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미국이 혼자서 세계를 휘두르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도 머잖아 끝나고, 대신 중국이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상황은 또 달라질 것이고, 그것까지도 잘 대비해야 한다고 우리를 가르치는 것이 광복절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선 국제 환경부터 파악해 볼까요?
△정 교수=지금의 전 세계적 정세는 독특합니다. 미국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미국적 가치의 세계화를 기반으로 단극적 패권질서를 유지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반면 다극 체제로 세계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반미 연합전선을 구축하고자 하는 중국·러시아·프랑스·인도 등 패권 도전국들 간의 경쟁과 갈등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합니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 주변의 동북아 정세는,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남북관계 개선으로 인해 질서 재편의 단계에 돌입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 주도 아래 유지돼 왔던 한·미·일 공조체제의 상대적 약화현상으로 인해, 미·일은 기존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는 반면, 중국·러시아, 특히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이를 지정학적 측면에서 평가해 본다면, 이 지역에서의 대륙세력인 중·러와 해양세력인 미·일간의 경쟁과 갈등 현상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남북한이 이제 더 이상 이들 양세력의 영향권에 귀속됨 없이, 오히려 기존의 질서를 재편해 가는 중요한 축으로서의 역할이 가능하게 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한반도가 이제 동북아의 주변적 위치에서 벗어나 중앙적 위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향후 남북한의 역할에 따라 이 지역 질서의 방향과 틀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박 부장=우리 현대사가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휘둘려 온 측면이 강한데, 지금의 상황이 조선조 침몰의 시초이던 100년 전과 비교될 수도 있을까요?
△김 교수=그때 한반도를 중심한 열강 구도도 오늘날과 꼭같은 4개국 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형세는 다릅니다. 전통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중국(청)과 러시아라는 대륙세력이 위축되는 반면, 새롭게 등장한 미국과 일본이라는 해양세력이 패권을 장악해 나가던 것이 100년 전 구도였습니다.
지금은 그 반대라 보면 되겠지요. 대륙이 세를 만회하기 시작하면서 해양세력이 뒷걸음질 치는 기미를 보이는 추세이지요. 그 중간에 축으로 존재하는 것이 한반도입니다.
세계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지난 세기 중반에는 미국·소련이 대결구도를 이뤘고, 그 축이 유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세기에는 대결구도가 미국·중국으로 바뀌면서, 한반도가 세계사의 축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오래 전부터 21세기를 미국 대 중국의 대결 구도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논의해 오고, 하버드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이에 대한 정책이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것을 본 적 있습니다.
△박 부장=어쨌든, 우리가 일제로부터 광복은 했습니다만, 분단된 상태의 광복은 반쪽 해방일 뿐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북 화해는 우리 민족과 국가의 참된 해방을 향한 첫 걸음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온전한 광복'을 향해 분단을 무너뜨려 가고 있는 현재 단계의 광복 혹은 해방적인 의미를 좀 정리해 주시지요.
△김 교수=영토의 분단은 문화의 양극화를 가져왔지요. 몇년 전 남북한 예술단 교환방문 때, 북한의 예술은 소련·중국의 것을 닮았고, 우리 예술은 미국의 것을 닮았다고 분석하던 평론가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북한 유행가가 우리와 중국 음악의 중간쯤 된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국어만 다른 게 아니라, 사용하는 외국어, 외래어까지도 너무 다르지요.
그래서 진정한 광복과 해방은 양극화된 문화를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고, 그 작업은 대륙과 해양의 문화가 합류하는, 세계문화가 집결하는 광장을 만들어 낸다는 세계사적 의미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정 교수=한반도의 분단은 우선 민족적 차원에서 볼 때, 민족국가 건설의 실패로 인해 민족 내부의 이질적 체제와 문화를 형성시킨 점과, 남북한 간의 적대관계가 조성됨으로써 남북한 주민에게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안겨다 준 점에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정치적 차원에서는 한반도의 분단은 곧 세계적 냉전체제의 공고화를 의미하며, 나아가 한반도가 대륙세력권과 해양세력권으로 분할·편입되는 기형적 현상의 초래를 의미한다고 판단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현 단계는 과거와 달리 남북한 주도로 외세를 활용하면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통해 상호간의 평화공존 체제를 형성시켜 나가는 초기단계이자, 한반도의 분단 극복과 냉전체제 해체, 그리고 통일과정으로의 진입단계라는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여기서 말하는 통일은 영토적 통일에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통일, 즉 실질적 통일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만.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광복은, 지구상 유일한 냉전지대인 한반도에서 냉전체제를 해체해 남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해소시키는 것과 더불어, 분단으로 인해 형성된 질곡의 민족사를 청산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남북한 각각의 사회적 통합을 통해 통일된 민족국가를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박 부장=그러나 통일만으로도 완전한 광복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어떠한 외세 흐름에도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주도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단계가 돼야 완전한 광복은 성취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제대로 건강해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김 교수=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엄정한 기강이 국가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건강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의 하나는 공과에 대한 평가를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친일분자의 자손이 독립 희생자들 후손 보다 더 잘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몇년 전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지탄받던 인사들이 대거 등용됐는데, 그 이유가 지난날의 실무경력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실무 경력을 인정해 조선총독부 관리 출신을 등용함으로써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던 지난 시절을 어떻게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갖고서는 친일분자의 후손이 더 잘되는 세상이라 한탄할 수도 없지요.이번 광복절에 시행되는 대규모 사면도 일부 공과(功過) 구별을 무너뜨리는 부분이 들어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가집니다.
친일적 잔재의 청산 등을 통해 그동안 불철저하게 이뤄져 온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을 매듭 지음으로써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박 부장=김 교수가 말씀하신 것은 아주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한편에선 또 사회적 참가치의 확립도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돈많고 지위 높은 것이 최상의 가치가 돼서는 사회가 건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돈 적고 지위 낮더라도 진정으로 남을 돕는 사람, 조그만 일이나마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존경받고 존중 받게 돼야 참가치가 확립된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건강성이 확보되지 못하면 우리 사회가 그 자체로 통합력이 약하고, 결국은 대외 경쟁 이전에 체내 소모로 소진될 것 아니겠습니까?
△정 교수=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시민 사회활동이 활성화되고 자율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대체로 정치권으로부터는 어떤 개혁도 기대하기 쉽잖은 것입니다. 시민단체가 나서서 이것을 극복하고, 정치권의 활동을 밀고 이끌어야 합니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과 권력에 의한 일방적인 해결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초래될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도 시민운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이와 더불어 한반도의 항구 평화정착을 위해 평화운동과 평화교육을 통한 시민들의 평화관 확립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평화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까지도 배제하는 적극적 의미에서의 평화를 말합니다.저는 이러한 평화교육을 통해서만이 아직 우리사회 내부에 깊숙이 뿌리내려져 있는 냉전사고와 문화의 해소는 물론,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 냄으로써 궁극적으로 적대적 분단체제를 해체시키고 남북한의 평화 공존체제를 형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한 사회가 진보적인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시켜 나가야 할 필요성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박 부장=그런 것을 위해서라면, 교육 같은 기반적인 것의 개혁도 필요하겠지요? 왜 우리나라에선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을까요?
△김 교수=지금 우리의 뿌리는 물론 근·현대사입니다. 더구나 굴곡까지 많았지요. 당연히 이걸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독립운동 선열들을 가르치지 않고서는 바른 국가 정신을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는 데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역사 기술의 과정상 현대사 정리와 교육은 늦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습니다.
한가지 방법은 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의 틀 안에서 뛰쳐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 보완될 수 있을 겁니다. 국사편찬 위원회가 획일적으로 편찬하는 체제를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지요. 국정교과서란 본래 전체주의의 산물이거든요. 다른 과목들처럼 검인정 교과서를 채택한다면, 현대사에 대한 서술과 교육이 지금보다 한 템포 빠르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 교수=사실 현대사뿐만 아니라 과거사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원인으로 국민적 기반이 매우 취약했던 과거 정권들이 지배 이데올로기 구축을 위해 역사교육을 동원했던 점과, 친일파 학자들 및 기득권 옹호세력들에 의한 역사왜곡을 들고자 합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국가 및 민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절실합니다. 제가 유학한 러시아만 해도 대학입시에서 역사와 어문학을 모든 학과와 계열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화 추세에 부응한다는 명분 아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실용주의적 교육정책으로 인해 역사·철학, 그리고 한국학 같은 기초학문을 경시하고 있는 풍토가 만연돼 있는 현실입니다.
물론 실용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현재와 같은 교육정책은 일시적으로는 국가 경쟁력 제고에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강대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박 부장=한반도 분단에 대해 일본 정부 당국도 책임론에 대한 대비를 일부 하고 있다는 얘기를 그쪽 사람으로부터 들은 바 있습니다. 이를 인정하고, 어떻게 기여해야 할 것인가 고민도 한다고 합니다. 분단에서의 일본 책임 문제, 그리고 그 해소 과정에서 일본의 기여를 통한 한일 과거사 청산 작업 등도 필요하겠지요?
△정 교수=한반도 분단에 있어 일본의 책임은 그들이 자행한 태평양 전쟁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에 의한 소련의 극동지역 침략은 곧 소련으로 하여금 한반도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야기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소련에 의한 아시아의 사회주의화를 방지하고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생겨난 동북아 지역의 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불러 왔던 것입니다.
게다가 일본은 한반도의 분단을 공고화시키는 데도 일조하지 않았습니까? 일본은 남한을 반공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해서 남한내 친일세력 및 반공정권과의 커넥션을 유지했으며, 게다가 남한을 자국의 상품시장화 함으로써 대일의존적 자본주의 체제를 심화시켜 왔습니다. 한마디로 일본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최대 수혜자였던 것이죠.
물론 최근들어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과 시민들 사이에서는 일본의 한반도 분단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더불어 자국이 추구하고 있는 군국주의적 정책을 포기하고, 나아가 기존의 한반도 현상유지 정책을 수정해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과정에 기여하는 것만이 한반도를 비롯한 주변국과 진정한 화해와 협력시대를 열 수 있는 지름길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제 판단으로는 지금 같이 재계·정계의 우파세력이 일본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에는, 일본이 남북한 주도의 남북한 관계 진전이나 평화정착 과정에서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성급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의 지배세력은 종군위안부 문제 및 핵 피폭자 문제 같은 우리민족과 관련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청산작업은커녕, 한반도의 현상유지와 한국의 대일 경제의존을 기반으로 하는 기득권을 유지시키고, 나아가 군사 대국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본의 입장변화 여부는 앞으로 진행될 북·일 수교협상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 과정을 예의주시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 교수=우리의 분단 극복에 있어 일본의 자세는 무척 중요하다는 데 이의 없습니다. 그런데 큰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일본'과 '일제'란 요소를 함께 안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침략과정에서 발생한 독도 영유권 문제를 여전히 고집한다는 것은 아직도 그들이 '일제'라는 요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일본이냐 일제냐'하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안정된 국제질서를 확립하기 어렵습니다.
△박 부장=앞으로 세계 다극화 및 중국 부상에 따른 새 질서 형성 때에 맞춰 장기적으로 염두에 둬야 할 과제도 있으리라 싶습니다.
△정 교수=향후 예상되는 한반도에 관한 열강들의 각축과 관련하여 지금 필요한 진정한 광복이란 남북한의 외교적 자율성 확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미 의존외교 같은 사대 의존외교 노선을 답습하지 않아야 하겠지요.
나아가 남북한은 외교적 공조를 통해 주변 4강에 대한 균형외교를 전개해야 하며, 분단 반세기만에 잡은 남북한의 외교적 주도권을 유지·강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럴 때 비로소 남북한이 주변열강을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과정의 협력세력으로 활용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남북한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 예를 들면 군비축소와 평화협정 체결 등과 같은 조치를 조속히 취함으로써 주변 열강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간섭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김 교수=이제는 새로운 개념에서 대미 의존도를 줄여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고 반미운동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통일이 되면 반드시 당면과제로 떠오를 것이 미·중 양대 구도에 대한 대응방안일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사회는 100년 전의 친중(청)·친일파와 마찬가지로, 다시 친미·친중파로 나뉠 가능성이 큽니다. 비록 열강들이 자기들의 목적대로 우리를 통제하려 하겠지만, 남북이 중심축 기능을 장악하려는 공동의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통일이 되면 훨씬 쉽겠습니다만.
△박 부장=종전엔 일본으로부터의 광복이 주로 얘기돼 왔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의식과 문화를 물들인 서구 영향 극복을 얘기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엔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문호 개방으로 다시 일본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문화와 정신의 문제도 여전한 과제이겠지요?
△김 교수=국학 이야기로 답을 찾아 보고 싶습니다.
국학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 후반에 크게 진흥됐습니다. 주체성을 강조하느라 유신시절 남한은 '한국적 민족주의'를 내세웠고, 북한은 주체사상을 내세웠습니다.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민족적 특수성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유신체제 말기에는 전문대 과정에도 국사 과목을 집어 넣을 정도로 국학에 대한 국민 교육이 강화됐습니다.
이렇게 한국적 민족주의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국학 연구가 필요했습니다. 정책적으로 많은 지원이 있었지요.
그러나 YS정권 때부터 국학은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체제유지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때문에 독재체제가 끝나면서 많은 학자들이 국학 연구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고 정권 차원에서도 지원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오른쪽으로 휘어진 가지를 왼쪽으로 휘어 바로 잡는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한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대신 세계화라는 것이 들어앉으면서 문제가 달라졌습니다. 더우기 세계화를 서양에서 말하던 '민족주의의 종언'과 혼동해 잘못 받아들이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서양에서 민족주의를 버렸으니, 우리도 빨리 버리고 세계화하자는 식이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서양의 민족주의는 우리가 말하는 것과 바탕이 다릅니다. 서양에선 근대자본주의의 산물로 200년 정도밖에 지속되지 못한 과도적인 것이 민족주의였고, 유럽 통합으로 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바람직한 것은, 다양한 민족문화가 공존하는 세계화를 추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신채호·박은식 선생의 '국혼적 민족사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 앞서 '사회진화론'이라는 것이 일본으로부터 들여져 와 계몽주의 운동의 바탕이 됐을 때, 선생들은 국혼을 강조했습니다. 그것이 한일합방론의 근거가 됨을 간파한 것입니다. 사회진화론은 진화의 주체를 국가로 파악, 앞선 일본에 통합되는 것이 우리에겐 진화주의 사관으로 봐도 당연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이용구도 여기에 바탕 두고 떠벌렸지요.
그러나 신채호 선생은 진화의 주체를 국가가 아닌 민족으로 파악했습다. 민족이 건재하면 국가는 언젠가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국혼을 여러 곳에 담아두려 했습니다. 종교에 담은 것이 대종교였고, 언어에 담은 것은 국어학이었으며, 역사에 담은 것은 국혼적 역사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국혼적 역사관은 절대 배타주의가 아닙니다. 민족혼을 보전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되, 세계와 서로 돕고 함께 사는 방향을 모색했습니다.
일본문화·서구문화를 다시 거론하기보다는, 이렇게 그 기본 철학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박 부장=국가에 대해서, 민족에 대해서, 정체성에 대해서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앞서 깨닫고 있는 분들이 나서서 상설 시민 토론마당 같은 것이라도 운영해 줬으면 싶은 생각까지 드는군요.
정신이 바탕되지 않은 물질은 모래 위의 누각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경제의 비틀거림 역시 그 응보라고도 하고,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지금 철학카페가 대유행이라지 않습니까?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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