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봉탈락 차완용씨 망향의 書

평남 순천이 고향인 실향민 차완용(80.대구시 중구 남산동)씨. 8.15 이산가족 상봉단이 반백년 분단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모습을 T.V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는 착잡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수소문끝에 북에 두고 온 아내(81)와 3남1녀가 모두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이번 상봉단 선정에서는 400명을 뽑은 1차 후보에서 조차 자신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었다.

가족 상봉의 꿈이 무너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5년 이산가족 방문단에 포함됐다 마지막에 북측이 입국을 거부, 좌절의 아픔을 맛봐야했다.

50년을 기다려왔는데 몇 해 더 못 기다리겠는가마는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는 세월이 두려울 뿐이다. 그가 뼛 속 깊이 사무치는 북의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여보, 내겐 고향으로 가는 길이 왜 이렇게 멀기만 한거요. 오늘 남과 북에서 가족을 찾아 이산가족 상봉단이 떠났소. 그 속에 내가 있으면 하는 생각에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소. 당신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랬겠지만.

1.4후퇴 때 홀로 몸을 피하던 그 때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오. 젊은 남자들은 남아있으면 모두 죽는다며, 군인이셨던 이종4촌 형님 손에 이끌려 군용트럭을 타고 홀로 내려오던 그날 새벽. 우리 애들은 세상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소. 아니, 혹 실눈을 뜨고 이 못난 아버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을지도 모르겠소.

당신은 애지중지하며 아끼던 금가락지를 떠나는 내게 건네줬었소. '혹 무슨 일이 있으면 이거라도 팔아 쓰시라'면서….

며칠이면 될거라며 떠나온 길이 되돌아가지 못할 길이 될 줄이야.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이제 당신도, 나도 80이 넘었구료.

당신과 우리 애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하늘로 날아오를 듯 기뻤지만 당신이 다리를 다쳐 거동조차 불편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메여왔소. 그동안 나없이 애들을 키우며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오.

지난 85년 이산가족 방문단에 포함됐다 출발 이틀전에 북측이 입국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소. 당신을 위해 몇날며칠을 밤새워 챙겨뒀던 선물꾸러미들, 편지들….

15년만에 다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다는 말에 혹시나 기대를 해봤지만 이번에도 내게는 운이 따르지 않았소. 더 늙기전에, 살아 생전에 한번만이라도 내 사랑하는 당신과 애들을 보고 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가 보오.

코흘리개 꼬마였던 우리 큰아들도 벌써 환갑이 되었겠소. 또 젖먹이던 우리 막내딸도 벌써 머리가 희끗한 중년이 되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산다는 소식에 지도만 펴놓으면 이곳도 가고 싶고 저곳도 가고 싶은 생각에 또 눈물만 흘린다오.

여보, 지금 당장이라도 철조망을 뛰어넘어 고향 땅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우리 조금만 참으십시다. 몇년전 폐와 위가 안좋아 수술도 두 차례 받았지만 이제는 건강도 좋다오. 오는 9월과 10월에도 상봉할 기회가 있다잖소.

당신이 건네줬던 금가락지를 당신 손가락에 다시 끼워줄 수 있는 그 날이 꼭 올거요. 그때까지 조금만 더 참고 건강하길 바라오. 李尙憲기자 davai@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