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울고 평양도 울었다. 온 겨레가 함께 울었다. "내 딸아 왜 이제사 왔니", 오열하는 구순(九旬)의 모정 앞에 철없는 어린애처럼 나뒹구는 칠순이 넘은 딸의 모습은 바로 지난 50년동안 이 민족의 가슴마다에 쌓인 한(恨)과 응어리가 일시에 터져나는 통곡의 모습 그것이었다. 이렇게 만나서 두손 맞잡고 마음을 열면 될것을 남북이 그리도 원수처럼 살아온 지난 반세기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6·15공동선언으로 가시화한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우리는 그렇게도 멀게만 느껴지던 남과 북이 바로 몽매에도 있지 못했던 내 피 붙이가 살고 있는 내 땅이요 우리의 산하임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이제 민족 화해와 통일의 대하를 잇는 가교가 열린 것인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1985년에도 있었다. 당시는 남북 방문단의 수가 각각 50명에 불과 했고 그나마 얼마 안되는 시간동안 얼굴만 확인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그 뿐이었다. 그리고 15년이니 이래서는 안된다. 이제는 그 지긋 지긋한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혈육의 정이 끌리는데로 서로 오갈수 있게 이산가족 상봉의 문부터 활짝 열도록 해야한다. 다행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한의 언론사 사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올해는 9·10월에 한번씩 만날 수 있게 하고 내년에는 고향 집까지 갈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밝히고 있으니 행여8·15가족 상봉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해소된다. 우리는 차제에 29일부터 열리는 제2차 남북 장관급 회담과 다음달 적십자 회담에서 양측이 올해중 상봉을 정례화·제도화 하는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할 것을 당부한다. 사실 남북 200명으로 제한된 이번 가족 상봉은 전체 이산가족의 수에 비해 너무나 미흡하다. 전체 이산가족이 남한만해도 766만명이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이산 1세대의 고령자만도 123만명이나 된다. 한해에 1만명이 만나도 100년이 걸릴 판이니 이런 식으로는 절대 다수의 고령이산가족은 상봉을 포기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의 폭을 대폭 늘리는 것과 함께 상설 면회소 설치와 자유로운 서신왕래, 생사확인 등 남북한 통신 허용이 시급하다고 본다.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만이라도 해주고 이들이 서로 사진과 서신을 통해 소식을 알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소식을 알길 없었던 국군포로와 납북 어부 문제도 이산가족 상봉 협상때 빠뜨리지 말고 함께 다루어야 할 것이다. 남북은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성을 배제한 인도적 차원에서 다룰것을 촉구한다. 이제 얼어붙은 한반도에 혈맥이 다시 이어졌고 따뜻한 피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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