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편 소설집 발간 잇따라

소설가들에게 있어 단편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일은 장편소설을 선보이는 것과는 또 다르다. 뚜렷한 주제의식, 등장인물의 내면세계와 빠른 움직임을 따라가는 선 굵은 묘사, 긴밀한 스토리 전개 등 함축적인 글쓰기와 완성도 측면에서 장편보다 오히려 더 강한 긴장감을 요구한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은 짧은 호흡의 소설집을 낼 때면 글쓰기에 더 힘이 들어간다고 고백한다.

문단에서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박상우, 서하진씨 등 등단 10년 안팎의 작가들과 신예작가 김종광씨의 소설집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박상우씨의 세 번째 소설집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문학동네 펴냄)에는 199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내 마음의 옥탑방' 등 모두 8편의 중단편이 수록돼 있다. 이번 소설집의 화두는 '악마성'과 '판타지'.

작가는 표제작의 느낌처럼 시대의 악마성을 드러내거나 악마의 시대에 인간이란 존재에 근본적인 물음들을 던져보기도 한다. 또 판타지(환상성)를 새로운 글쓰기의 기제로 수용한 점이 눈에 뛴다.

'붉은 달이 뜨는 풍경' '어느 지하생활자의 수기' '내 혈관 속의 창백한 시' 등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을 통해 작가는 고독과 권태, 반복, 단절, 망설임, 비겁 등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속에 도사리고 있는 모더니티의 광기를 발견하고, 극단의 물신화와 파편화로 치닫는 90년대의 광기에 주목한다. 이런 광기의 이성을 걷어내고 이면에 교묘하게 가려져 있던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가감없이 그려내는게 작가의 몫이다. 문학평론가 김성곤씨는 "문학이 안겨주는 심미적 경험을 엄격하게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한 작품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서하진씨의 '라벤더 향기'에는 단문이 자아내는 서정적인 문체와 속도감 있는 짜임새, 사건과 스토리를 포용하는 시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표제작을 비롯 '모델하우스' '개양귀비' 등의 단편은 가정이라는 공간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일탈의 욕망과 삶의 진실이라는 관점에서 해부하고 있다. 안정된 가정과 불륜이라는 테마를 대비시키는 작가는 불륜의 사랑을 감행하는 여러 인물들이 맞닥뜨리는 일상의 건조함을 간결하고 절도있는 관찰과 묘사로 부각시킨다.한편 지난 98년 계간 '문학동네' 문예공모로 등단한 김종광씨의 첫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은 강력한 서사 구성력과 능란한 해학과 풍자 등 신예답지않는 작가적 역량을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발표 순서대로 11편의 단편을 담아낸 이 소설집에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을 모티브로 전개되는 '분필 교향곡', 원동기 면허시험장에서 벌어지는 능청스런 입담을 익살과 해학으로 녹여내는 '많이많이 축하드려유' 등의 작품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의 자질을 보게 한다. 특히 활력있는 문체와 생동감 넘치는 작중인물들의 대화, 작가의 해학과 풍자가 선사하는 쉴새없는 웃음들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徐琮澈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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