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체상봉-고려호텔

○…15일 아내와 외아들을 만난 이덕연(74)씨는 생후 8개월때 헤어진 아들 관열(52)씨가 양복에 훈장을 가득 달고 나타나자 다소 어리둥절해하는 모습.

이씨는 아들 관열씨가 "사회주의 건설과 군사복무에 노력한 공로로 당으로부터 국기훈장 1급, 노력훈장 등 무려 16개나 받았다"고 자랑하자 어깨를 두드리며 "고생 많았겠구나"라고 격려했다.

아내 신순녀(72)씨는 "어제 남편을 만나러 황해남도 벽성군에서 올라와 양강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고 설명한 뒤 "친애하는 김정일 장군 배려로 죽은줄 알았던 남편을 다시 만났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기도.

○…부산에서 올라온 김일선(81)씨는 북한의 아내 오상현(77)씨가 자신의 가슴에 파묻히며 "여보, 그동안 속절없이 살았시오" "우린 이제 어찌합니까"라고 울면서 가슴을 치자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북측의 여성 안내원과 취재기자들도 이들의 상봉장면을 지켜보다 눈가의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피와 씨는 못 속여"

○…약산 진달래로 유명한 평안북도 영변군이 고향인 채성신(73)씨는 9세 때 헤어진 동생 정열(62)씨를 만나자 "얼굴을 몰라볼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눈매 등이 그야말로 아버지를 쏙닮아 당장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역시 피와 씨는 못속인다"며 취재기자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

○…이날 고려호텔 2층과 3층에서 치러진 단체상봉은 북측 가족들이 약 30분쯤 먼저 와 번호표가 부착된 테이블에 앉아 대기하면서 안내원 등 주위의 눈치를 살피느라 다소 어색해하며 긴장된 모습을 연출.

하지만 최경길씨의 처자식 상봉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가족 친지 상봉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눈물바다로 변하자 흘낏흘낏 옆자리를 쳐다보며 마구 눈물을 흘리기도.

○…"허리는 너무 아프지만 이를 악물고 만나러 왔어."

척추질환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상봉장에 들어선 김금자(69.여 서울 강동구 둔촌동)씨는 사촌 자매 금도(72).금년(69)씨를 만나자 한참 동안을 껴안고 울었다.

사촌들은 휠체어를 탄 금자씨를 보고 "이렇게 아픈데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눈시울을 글썽였다.

금자씨는 "비록 잘 걷지는 못하지만 아무리 험해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해서 이를 악물고 왔다"며 "이제 여기서 쓰러져도 아무 여한이 없다"고 울먹였다.

그러나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오빠(71)는 고혈압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는 말에 다시 오열했다.

사촌들은 남측 안내원들에게 "동생을 잘 돌봐달라"며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금자씨는 20년전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허벅지 안쪽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으며, 최근에는 허리까지 삐끗해 교환방문 일정 내내 휠체어에 의지한 채 식당에도 내려오지 못하고 바깥 출입도 어려워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주일이 50년 걸려"

○…"1.4후퇴 때 1주일만 백리 밖에 피난가 있으면 무사하다고 해서 떠났는데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누나말을 듣지 않았을텐데..."

한때 고혈압으로 여행불가 판정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이산가족 방문단에 포함된 김상현(62.서울 송파구 마천2동)씨는 누나 상월(70)씨와 조카 이예숙(50)씨를 만나 50년간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풀었다.

황해도 수안군이 고향인 김씨는 2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나 바로 윗누나로부터 귀여움과 각별한 사랑을 받은 탓인지 한 눈에 누나를 알아보고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9살 때처럼 누님에게 그냥 안겨보고 싶은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소원을 풀었다"며 기뻐했다.

○…"아버지가 내 얼굴을 몰라볼까 봐 점을 빼지 못했어요."

남에서 온 아버지 이재경(80. 경기 부천시 원미구)씨를 만난 딸 경애(52)씨는 자신의 왼쪽 뺨에 난 커다란 점을 가리키며 이렇게 울먹였다.

경애씨는 "결혼을 앞두고 점을 빼려고도 생각했었지만 통일이 돼 아버지를 만났을 때 몰라보면 어쩌나 해서 그냥 뒀다"며 아버지의 가슴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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