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울방문 사흘째 표정

"오마니… 50년 동안의 불효를 용서하십시오"50년 동안 소식없는 자식을 기다리다가 먼저 세상을 떠났건만 고향마을도 산소도 찾아갈 수 없는 '불효자식'이 전할 수 있는 것은 정성스럽게 따른 술 한잔 뿐이었다.

숙소에서 개별상봉이 이뤄진 16일 20여명의 북측방문단이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들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춘천이 고향인 문병칠(68)씨는 이날 워커힐 호텔내 숙소에서 북녘 아들의 생사를 확인한 지 불과 사흘만인 지난 달 19일 세상을 떠난 어머니 황봉순(90)씨의 제사를 모셨다. 병호씨(63)와 정자(58), 정선씨(55) 등 동생들과 만나 제사를 지내면서도 문씨는 "출발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면서 "진짜 돌아가셨느냐"고 몇번씩 되물어 눈물바다를 이뤘다.

영주군 이삼면이 고향인 권중국(68)씨도 숙소에서 동생들이 준비한 어머니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코엑스 상봉장에서 '어머니가 3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말없이 영정을 쓰다듬기만 했던 권씨는 "이렇게 동생들이라도 만나게 된 것은 장군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마침 지난 13일이 어머니의 기일이라 이날 호텔에서 큰 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 것이다.

달성군 가창이 고향인 양원열(69)씨도 형 진열(82)씨, 누이 정아(78)씨 등과 숙소에서 지난 69년 돌아가신 어머니의 제사부터 지내면서 못다한 효도를 대신했다. 마침 17일이 어머니의 30주년 기일이라 북에서 가져 온 인삼주 등으로 약식 제사상을 차렸다.

서울 방문 이틀전 큰 형 박원길(89)씨가 세상을 떠나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부여출신인 박노창(69)씨도 이날 숙소로 찾아온 조카들과 함께 큰 형의 제사를 지냈다. 단체상봉장에서 만나기로 했던 조카들은 마침 그 날이 발인 날이어서 나오지 못했다. 박씨는 "제사라도 지내 조금이나마 무거운 마음이 덜하다"고 말했다.

북의 계관시인 오영재(64)씨도 북에서 돌에 새겨서 만들어 온 부모님의 영정을 창가에 두고 자작시 3편을 올려놓은 뒤 정성껏 술을 따랐다. 오씨는 북에서 가져 온 크리스탈 잔을 꺼내면서 "이 잔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환갑때 주신 잔"이라고 말했다.

봉화군 내성면이 고향인 홍두혁(67)씨도 북에서 가져온 인삼주를 올려놓고 제사를 지냈다. 동생 두근(60)씨는 "형님께서 직접 지방을 쓰시고 나도 올때 지방을 한 장 써왔다"며 "형님이 북한에서 가져오신 인삼주와 우리가 준비한 과일을 올려놓고 부모님께 제사를 지냈다"고 말했다.

徐明秀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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