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8.15 상봉-'서울 만남' 이모저모

50년 수절 4일간의 만남

○..."50년간의 사무친 그리움을 4일간 어떻게 다 풀수 있겠습니까. 짧은 시간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50년전 소식이 끊긴 남편 이복연(73)씨를 기다리며 평생 수절하며 살아온 이춘자(72.안동시 동부동)씨는 남편과 만난 나흘이라는 짧은 시간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토록 보고싶던 남편을 만나면서 50년의 긴 공백을 채우려고 했으나 무정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또다시 긴 이별과 기다림의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떠나는 남편에게 '건강하십시오'라는 말 밖에 할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50이 넘은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살아 계신 모습을 보여줘 여한이 없고 막상 다시 헤어지자니 너무 섭섭했습니다"고 울먹였다.

아들 이지걸(53)씨는 "돌아가신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를 뵈니 처음에는 별다른 감정없이 덤덤했으나 잠시 함께 지내면서 아버지에 대한 정을 느껴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며 "아버지는 떠나시면서 '건강해라, 다시 만나자. 어머니를 잘 모셔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어릴때 일 생생히 기억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 하더니 북한에서 훌륭한 대학교수가 되어 있었다 " 북한에서 온 남동생 원렬(70)씨를 만난 양용생(75.대구시 수성구 상동)할머니. 원렬씨를 북한으로 다시 떠나 보내고 18일 오후6시 고속버스 편으로 대구로 돌아온 할머니는 지난 3박4일이 안타깝기만 하다.

동생과의 만남은 할머니가 19살때인 지난 44년 고향인 달성군 가창면 용계동에서 칠곡으로 시집가고, 6.25 전쟁으로 소식이 끊긴지 56년만의 일.

할머니는 "서울대 문리대 재학중 전쟁을 맞아 북한으로 간 동생은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김철주대학에서 수학 교수가 됐다"며"동생이 대구에서 자랄 때의 일을 너무나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상봉 기간중인 17일 할머니는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남동생 문렬(64)씨 내외, 오빠 진렬(82.강원도 강릉시)씨, 언니 점위(78.경남 창원시)씨와 함께 워커힐 호텔에서 어머니의 제사를 모셨다. 이들 가족들은 상봉 기간에 기일(음력 7월17일)이 낀 것을 알고 미리 제사 준비를 했다. 또 제사 전에 케이크를 마련, 원렬씨의 칠순(20일)을 앞당겨 축하했다.

金敎盛기자 kgs@imaeil.com

끝내 공항에 안나가

○..."50년만에 만났을땐 더 없이 좋았지만 헤어지기가 너무나 힘들었어"

북에서 내려온 동생 치효(69)씨와 만났던 김치려(74.대구시 북구 태전동)씨의 남쪽 5형제는 18일 끝내 김포공항에 나가지 않았다. 생이별의 아픔이 더할까봐 차마 배웅을 할 수 없었기 때문.

하지만 TV를 통해 동생이 북으로 가는 장면을 보고는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형제들은 김씨의 경기도 분당시 큰 아들집에 머물며 3박 4일간의 꿈같은 시간을 되새기고 있다.

형제들은 동생이 떠나기 하루전인 17일 저녁, 동생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소리내어 한없이 울었다.

"지금가면 언제올지 모르니까 건강하게 오래살며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자"며 서로를 위로했다.

김씨는 "상봉 첫날, 헤어질 당시의 19살 동생 얼굴이 너무나 늙어버린 것을 보고 분단의 세월이 너무나 야속했다. 살이라도 좀 쪘으면 좋았을텐데"라고 가슴 아파했다.

북에서 온 동생은 혹시나 부모님 산소에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술과 음식을 준비해왔으나 결국은 호텔방에서 부모님 사진을 놓고 조촐한 제사를 지냈다.

李鍾圭기자 jongku@imaeil.com

동생 아버지 빼다 박아

○..."60이 넘은 동생을 보니 어릴때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아버지를 그대로 빼다 박았구요"

북에서 찾아 온 남동생 권중국(68)씨를 만난 권계희(73.영주시 하망동)씨는 다시 찾아온 생이별을 아쉬워하며 남아있는 동생들과 함께 울먹였다.

지난 13일이 기일인 어머니의 제사를 북에서 온 동생과 함께 호텔방에서 지냈다는 권씨는 "3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제사에 지금까지 장남인 동생이 참석하지 못했으나 올해는 호텔방에서나마 우리 집안의 장남과 함께 어머니의 제사를 모셔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권씨는 "또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눈물을 주체할수 없어 손을 흔들며 떠나는 동생을 자세히 보지를 못했다"며 "언제 다시 만날수 있을지..."라며 한숨 지었다.

누나와 함께 형을 만난 동생 중후(62.영주시 풍기읍)씨도 "생전에 형님만 애타게 찾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형님이 살아계시다는 소식을 전해드린 것 같아 마음이 다소 홀가분하다"며 "형님이 살아계시니 이제는 하루빨리 통일이 돼 형제가 모두 모여 화목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우느라 할말도 못해"

○..."너무나 그리웠던 형님을 만나 꿈만 같습니다.이제 다시 만나면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수 있겠지요"

형 김영기(67)씨를 만난 김창기(58.안동시 송천동)씨는 "기적처럼 만나 바람처럼 헤어졌지만 만났다는 자체가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만나자 이별이라더니 나흘간의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가고 함께간 두 누님은 오빠와 헤어질때 우느라 할말도 제대로 못했다"며 3박4일간의 짧은 만남을 아쉬워했다.

김씨는 "부모님이 살아계실때나 누님들이 모일때면 항상 형님이야기를 해 하나뿐인 형님이 너무 그리웠는데 이번에 형님을 보니 어릴적 기억이나마 늠름했던 형님모습이 떠올라 목이 메었다"며 "이제는 형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겠다"고 다짐했다.

헤어질때 가족사진첩과 카메라, 계산기 등 생필품을 형님에게 선물했다는 김씨는 "마지막에 '건강하고 굳세게 살아라'고 당부하신 형님의 말씀대로 다시 만날때까지 건강하고 굳세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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