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노라 막무가내 우기는 달력의 성화에 못이겨 국도로 나섰다. 지난 7일은 가을 문턱이라는 입추(立秋)였고, 오늘은 소슬바람 솔솔 분다는 처서(處暑). 달력으로는 분명 계절이 가을 언저리에 와 있는 셈이다.
성주·김천으로 향하는 30번 국도. 대구 시내는 여전히 "아직은 여름 한복판이야" 하고 고집을 피워댔지만, 거기엔 가을이 벌써 널려 가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낸 들길은 가을 치장이 한창. 제철 맞은 들국화·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세월에 순종할 줄 아는 이름 모를 여름 꽃은 고개를 떨궜다.국도 언저리에 기대고 선 마을, 선남면 신부2리. 여름 내내 속을 살찌우느라 길게 자란 옥수수 수염은 누렇게 말라가고, 강냉이 자루를 따들이는 촌부의 손이 분주하다. 훗날을 생각할 줄 아는 촌 아낙의 손은 그러나, 큼직하고 잘 익은 몇을 못 본 척 지나친다. 이대로 단단하게 굳어지면 내년에 종자로 쓸 작정이라고.
너른 마당 위로 붉은 잠자리 붕붕 날고, 대롱대롱 매달린 고추가 발갛게 익어간다. 잇대 세워진 깻단이 말라 가는 마당 한켠에선 나이 든 부부의 채질이 한창. 지난 봄 남편 박남호(70)씨가 괭이로 돌투성이 밭뙈기를 쪼아 씨앗을 뿌렸다가 열흘 전 쪄내 세워 말리기 시작한 뒤끝의 수확이다. "볶아서 기름 짜야지… 시집간 딸도 주고, 서울로 간 아들네에도 보내고… 그러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어" 환하게 웃는 아내 김씨의 얼굴은 벌써 풍성한 가을이었다.
이 국도 변에선 지난 여름 생각 없이 자란 잡초 베기 작업도 한창이었다.
성주군 월항면. 국도를 따라 달리는 작은 강에서는 고기를 잡아 올리는 노인의 뜰채질이 여유롭다. 껑충하게 자란 수수에도 붉은 빛이 언뜻언뜻 비치기 시작하고, 이삭 팬 벼를 느긋하게 바라보는 농부의 뒷모습엔 가을이 다가 서 있었다.
이제 살찐 가을을 기대해도 좋을까? 뻔뻔한 불청객, 태풍과 멸구는 없어야 할텐데…. 曺斗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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