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동차 분리신청 이후 현대 핵분열

경영권 분쟁 등으로 위기를 겪었던 현대가 23일자동차 계열분리 신청 이후 변화의 소용돌이를 맞고 있다.

철옹성 같았던 오너 지배체제가 실질적인 와해수순을 밟고 있고 그룹내 '핵분열'이 가속화되면서 주력 계열사들은 그룹의 '우산'을 벗고 독자적 활로 모색에 분주한모습이다. 업종 전문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만이 살 길이라는 시대적 조류가 현대에서도 고스란히 구현되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 내적인 조직문화도 변화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 반년에 걸친 '소모전'이낳은 상처를 하루 빨리 치유, 화해와 심기일전을 통해 새출발을 하려는 분위기가 대두되고 있다. '돌격 앞으로' 식의 추진력 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타는 합리성과 견실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경영풍토도 바뀌어가고 있다. 정부와 시장도 현대의 이같은체질개선 노력을 예의주시하며 다시금 신뢰를 보내고 있는 분위기다.

◇ 계열분리 신청, 신뢰회복 청신호 = 현대의 자동차부문 계열분리 신청은 무엇보다도 시장과의 약속을 끝내 지켜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계열분리가 업종전문화 취지를 넘어 현대 전체에 대한 시장신뢰 회복의 바로비터였기 때문이다. 그간 현대는 계열분리 지연으로 인해 시장의 냉엄한 심판에 직면해야 했고급기야 유동성 위기의 '악몽'을 재연시키는 수난을 받아왔다.

또한 현대 계열분리가 재벌 구조조정의 최대 화두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개혁드라이브 정책은 한층 힘을 받게됐다. 앞으로 구조조정의 정도(正道)를 걷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귀중한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다. 다만 정부로서도 현대사태를 통해 무작정 밀어붙이기식의 인위적 수술보다는 시장기능회복을 통해 실질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방향을 정해야할 것으로 지적된다.

◇ 선단식 경영구도의 대격변 = 이번 계열분리 신청은 현대가 고수해온 선단식오너 지배체제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는 점에서 개혁적 의미가 크다. 각 계열사는업종전문화 취지에 따라 장기적으로 제갈길을 찾아갈 전망이어서 그룹 핵분열이 자연스럽게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번 자동차 및 인천제철 부문 계열분리 이후에도 25개의 계열사가 그룹에 잔류하게 되지만 2003년까지 예정된 수순에 따라 독립기업군 체제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는 올해 하반기 현대엘리베이터(매각),현대에너지(매각), 현대석유화학(외자유치후 계열분리), 현대 이미지퀘스트(분사)등 4개사를 추가 정리한 뒤 2002년 상반기까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을 분리시키고 나머지도 2003년까지 순차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미 현대사태 와중에서 각 계열사는 사실상 분리됐다는 관측도 많다. 중공업 부문은 지급보증 소송사태를 계기로 독자노선을 선언했고 MH(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의장) 계열의 건설, 상선, 전자, 증권 등도 그룹에의 의존을 탈피, 각기 독립경영체제로의 변신을 서두르는 징후가 뚜렷하다. 여기에는 불과 석달전까지 현대회장으로 그룹을 통할하던 MH가3부자 동반퇴진 선언이후 대북사업에 전념하게 되면서 '힘'이 각사로 분산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건설→상선→중공업.전자.증권 등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연결고리가 돼온 상선지분의 정리가 MH 지배력 와해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고있다는 관측이다. 현대건설이 당초 상선지분 23.9%에 대해 '리콜'이 가능한 EB(교환사채)발행을 통한 처분 대신 직접 매각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점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변신하는 MK, 은인자중하는 MH = MK의 자동차 부문은 기존의 색깔을 바꾸는과감한 변신을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계열분리 신청으로 안정적 경영권 확보가 구축된 이상 자동차 전문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철저히 검증받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제2의 창사'에 버금가는 자동차 소그룹 출범을 위해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이 한창이다. 또 종전의 생산능력 팽창위주의 전략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는수익경영에 초점을 두고 경영전략도 대폭 손질되고 있다. 물론 세계 5대 자동차메이커로 도약한다는 목표는 불변이라는 것이 현대차의 설명이다. 이에따라 다임러크라이슬러와의 전략적 제휴와 월드카 공동개발, 차세대 연료전지차 개발 등 그동안 경영권 다툼에 밀려 지연됐던 크고 작은 사업프로젝트가 대거 햇볕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현대사태로 직격탄을 받았던 MH는 당분간 '얼굴'을 드러내놓지 않은 채 대북사업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3부자 동반퇴진 선언에 따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점도 있지만 현대사태의 여진이 남아있는 현단계에서 대외적으로 다시 부각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그만큼 MH가 현대사태로인해 입은 후유증이 크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MH의 한 측근은 "본인이 대외적으로 나서는 것을 원치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부친(정주영 전명예회장)의 뜻에따라 대북사업을 조용히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MK-MH 화해할까 = 그동안 내분의 불씨로 작용했던 계열분리 문제가 결국 정리됨으로써 MK-MH가 화해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특히 최근 건강이 악화된 정전명예회장의 '명예'를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형제간 화합이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장자인 MK의 역할론이 대두되면서 화해 무드를 예상하는시각이 많다. MK는 최근 현대사태 와중에 MH측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화해의 손짓을 보냈고 주위에도 가족화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누차 피력했다는 후문이다. MJ(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도 한 몫 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간 정 전명예회장의 의중을 헤아리면서 암암리에 MK-MH간 갈등을 중재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MH가 화답할 지 여부는 미지수이나 최근 MH 측근들은 MH가 가족간 화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귀띔하고 있다.

◇ 계동사옥 재기 몸부림 = 계동사옥은 계열분리 신청을 계기로 자금난과 경영권 다툼의 '악몽'을 속히 씻어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침체의 그늘을 완전히 벗은 것은 아니지만 계열분리 신청 이후 '안정'으로 되돌아가려고 애쓰는 표정이다. 무엇보다도 6개월간의 격렬했던 현대사태가 남긴 후유증을 속히 치유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임직원들도 다시 '현대'를 외치며 새출발을 다짐하는 모습이다. 현대의 임원은 "이제는 실추된 현대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노력해야할 것"이라며 "아픈만큼 성숙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그동안의 상처는 너무나 깊었다. MK와 MH계열은 본업(本業)보다는 경영권 다툼에 열중한 나머지, 공격경영을 통한 경쟁력강화에 뒤떨어진 것이다. 재계의 한 전문가는 "현대가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는 2∼3개월의 회복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유증 극복방안은 당장 제2의 도약을위한 조직 및 인사개편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며 주목된다. 다만 자구노력 등 당면현안이 남아있어 조직을 대폭 수술하기 보다는 조직슬림화 차원에서 '상징적 차원'의소폭 인사가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 남은 과제는 = 계열분리 신청으로 현대가 지난 13일 시장에 제시한 3가지 해법중 2가지가 해결됐다. 현대건설 자구계획안은 당초 계획대로 실천만 담보될 경우자금위기의 재연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 높고 계열분리도 공정위의 '승인'만 남겨진셈이다. 그러나 문제경영인 퇴진으로 집약됐던 지배구조 개선문제는 여전히 미제로남아있다. 현대주변에서는 외자유치와 유동성 확보 등 현안수습을 위해 관련자들이일괄퇴진하는 것은 어렵고 다만 인책론이 제기된 일부 경영진에 한해 추후 이사회와주주총회 등 법이 정한 절차를 거쳐 경영책임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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