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소기업의 내일은 있는가

내로라 하는 지역 대기업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진 마당에 빈사상태에 빠진 지역 경제를 회복시킬 유일한 방안은 중소기업 활성화 뿐이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지역 중소기업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잡초처럼 끈질기게 연명해 왔다. 외환위기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추스리며 가까스로 재기를 노리던 중소기업들은 다시금 우방 부도라는 악재를 만나 휘청이고 있다. 협력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제조관련 기업들조차 이번 사태가 몰고 올 파장을 염려하며 잔뜩 움추리고 있다. 지역에 제2의 외환위기가 닥친 것이다. 대구·경북지역 중소기업은 대구권역을 중심으로 섬유, 자동차 부품, 기계가 강세를 보였고 구미의 전자, 포항의 철강이 주축을 이뤄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 모두 지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신기술 개발을 통해 벤처로 전환하는 발빠른 기업들도 있지만 아직 전체 기업에 비해 미미한 숫자다.

"지역 중소기업들의 문제점 중 하나는 1~3개 대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납품선이 단순하다 보니 대기업이 기침만 해도 하청업체는 독감을 앓습니다. 비교우위의 기술이 없는 탓이죠. 행여 납품선 끊길세라 전전긍긍하면서도 기술개발을 통한 시장 개척에는 너무 소극적입니다. 구미, 포항지역의 어려움도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대구경북지방중소기업청 관계자의 말이다. 외환 위기 이후 빅딜을 통해 상당수 대기업 납품선이 떠나버린 구미의 경우 뒤늦게 IMF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기존 공단의 입주공장 중 3분의 1 가량이 비어있다. 4공단 분양률은 10%에도 못미친다.

포항지역의 철강 관련업체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98년 이후 일부 관급공사를 제외한 대부분 민간 토목·건설 공사 발주가 중단된데다 이전에 발주한 공사 납품은 이미 끝난 상태여서 판로가 막혀버렸다. 늦깎이 IMF 환자들인 셈이다.

그렇다고 섬유도시 대구도 나을 바 하나 없다. 대구시가 하늘 높이 치켜든 밀라노 프로젝트의 깃발을 보고 희망을 갖는 섬유관련 중소기업은 별로 없다.

"지난해 고부가 섬유제품 생산을 위해 100억원 가량 시설투자를 했습니다. 위기가 바로 기회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섬유업체 사장들이 '미쳤다'며 손가락질 하더군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데 쓸데없이 무리수를 둔다는 것이죠"

서대구공단에 입주한 섬유업체 사장의 말은 그간 지역 섬유업계가 얼마나 타성에 젖어있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 업체는 과감한 투자 덕분에 기대 이상의 매출액을 달성했고, 신기술 개발을 통해 해외 거래선도 다양화시킬 수 있었다.

이런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섬유 뿐 아니라 타 업종도 분야별 기술 선도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고가제품은 미국, 일본, 유럽에 뒤지고 저가제품은 동남아, 중국에 추월당했다. 기업들은 신기술을 개발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고 하소연이다.

지역 중소기업 수는 전국의 10% 정도. 그럼에도 중소기업청 정책자금의 17% 가량을 지역업체가 차지했다.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바꿔말하면 그만큼 지역에 돈이 없다는 뜻이다. 아울러 지역 중소기업주들의 경직된 사고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회사는 내 것'이라는 생각에 젖어있다보니 지분 참여를 통한 투자 유치에 인색하다. 투자받느니 차라리 은행에서 돈을 빌리겠다는 사고가 팽배해 있다. 외환 위기 이후 끌어댈만한 담보는 모두 동원한 지역 기업들에게 우방 사태로 잔뜩 경직된 자금시장은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연쇄 도산이 우려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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