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무의촌

소낙비 그친 뒤 성묘하러 산길을 오르니 가슴 가득 벅차오는 느낌이 있다.후끈하게 다가오는 이 매캐한 흙 냄새를 아버지는 생전에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9월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함께.

올해 봄 3월, 아버지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아버지를 깊이깊이 파고든 암은 마른 짚단처럼 소리 없이 타 들어가게 했다.

평소 건강에 대해서는 자신 있어 하셨고, 직장 일에 바쁜 자식들 걱정한답시고 내색조차 안 하시던 분이라 그냥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식사를 하시는데 젓가락 잡는 손이 영 서툴러 보였다.

"아차"싶어 검사를 해보니 암은 이미 머리 속, 간 등 몸의 여러 곳에 깊이깊이 파고들어 있어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기침 한번 하지 않고 지내셨던 분이 환자라고 진단 받은 순간부터 촛불이 타들어 가듯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진단 받은 지 3개월만에 그것도 칠순도 안 된 연세에 그렇게 소원이던 5월의 금강산 여행도 하시지 못한 채, 아쉽기 그지 없는 한평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유학 때문에 귀국이 늦어 임종을 못한 동생이 울먹이며 하던 한마디가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의자 집이 바로 무의촌이네"하던 말.

사실, 우리집에는 나는 소아과 의사이고, 남편은 예방의학을 전공한 의사이고 집안에 줄줄이 의사가 있지만 아버지의 암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해 치료 시기를 놓친 것에 대해 모두들 가슴을 쳤다.

동생의 '무의촌'이라는 말에 한마디 대꾸조차 할 수가 없었다.

마음을 짓누르는 응어리와는 상관없이 아무런 동요 없이 빼곡히 돋아난 무덤가의 잔디가 비를 머금고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다. 아버지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얘야! 마음 아파하지 말고 열심히 환자 봐라, 나 편히 쉬고 있다"라고.대구의료원 소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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