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구 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외국인노동자 실태와 고용허가제' 토론회가 열려 많은 양심적인 분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토론회의 결론은, 현재 여당과 정부가 추진하는 고용허가제는 연수생제 또는 연수취업제보다는 일보 진전된 제도로 기득권층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25만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보호, 불법 노동의 방지를 위해 이번엔 꼭 관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을 전후로 이 땅에는 중국과 동남아 등지로부터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왔다. 90년대 초엔 10만을 밑돌았으나 1995년 무렵에는 약 15만, 1997년엔 약 20만, 그리고 2000년 현재 약 25만명 정도다. 대구·경북지역에만도 약 4만명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여태껏 10년간 전체 이주노동자의 약 3분의2가 항상 미등록('불법')노동자라는 점이다. 이번 토론회서도 이런 불법 취업 내지 불법 고용은 커다란 사회 문제라는 데 모두 동의했고, 또 이 기이한 '불법-3분의2 법칙'이 연수생제로부터 비롯되는 구조적 문제임에도 공감했다.
연수생제가 불법을 조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연수생제 이외는 단순 노동력의 유입이 금지되어 합법 취업 길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둘째는 연수생제가 갖는 자체 모순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기회만 되면 무단 이탈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연수생제 자체 모순은 심각하다. 연수생들은 한국 오기 전에 브로커에게 500만원에서 1천만원의 거금을 내며, 한국 와서는 기초 기술이나 언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연수 아닌 현장 노동을 한다. 대개 '3D 업종'에서 한국인과 같이 일하면서도 보상은 최저 임금 수준인 '연수 수당'을 받는다. 하루 4시간 이상의 초과노동을 거의 강제 수행하고 토, 일요일 가리지 않고 일해도 65만원 정도 받는다. 게다가 이들이 현장을 이탈할까봐 기업주들은 여권을 빼앗고 월급의 일부를 적치한다. 기업주들도 이들이 도망가면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에 낸 보증금 30만원씩을 떼이는 데다 생산도 지장이 있기에 감시와 통제를 확실히 한다.
"저는 하루에 12, 13시간 일하고 36만원 받습니다. 그나마 15만원은 회사가 예치하고 한달에 2만4천원씩 관리비로 냅니다. 20만원 중 10만원 송금하고 10만원으로 생활합니다"(스리랑카인 아누빠마). "저희는 연수생들로 99년에 한국 와서 금속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회사는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압수하고 외출과 외부 전화를 금지시켰으며 사장은 저희에게 개의 배설물을 먹으라고까지 했습니다"(인도네시아인 푸지안토로와 에디)
연수생에서 무단 이탈하거나 '코리안 드림'을 갖고 처음부터 '불법' 입국한 사람들은 '불법' 노동을 한다. 이들을 원하는 브로커와 고용주들도 많다. 불법취업자들은 최고 80만원 정도 받는데 이동이 비교적 자유롭고 연수생에 비해서도 많이 받기에 신분적 취약성과 그로 인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불법' 노동을 한다.
모순 투성이 연수생제를 옹호하는 기득권층은 국내인과 동일한 임금 보장 및 노동권을 부여하려는 고용허가제에 대해 시기상조론이나 비용상승론을 들이댄다. 그러나 연수생제, 10년이면 족하지 않은가? 그동안 한시도 문제없는 때가 없었다. 또 '연간 6천억원 비용 증가' 주장은, 역으로 지난 10년간 연수생제 하에 6조원 정도를 부당 취득했다는 말이다. 그 돈을 되받아서 체임과 산재보상금 주고, 한 맺힌 상태로 죽은 자들과 그 유족에게 돌려줘야 한다. 진지한 사과와 함께. 그리고 수십 개의 자기희생적 이주노동자 상담소와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도 보상해야 한다.
진정한 세계화는 우리와 이주노동자들이 더불어 사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간의 침묵과 묵인, 방조와 공범의 태도를 한시바삐 떨쳐내야 한다. 고용허가제는 이를 위한 첫 걸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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