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NYT가 본 미 NMD연기 속사정-"러시아 반발 때문"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NMD(국가 미사일방위) 체제 구축 결정을 왜 연기했을까? 뉴욕 타임스 신문 3일자가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 또다른 뒷면을 보도했다. 아래에 요약한 내용의 핵심은 러시아 국내정치 상황의 변화가 결정적 변수가 됐다는 것.

NMD 결정을 연기하게 된 배경 중에는 남북한 관계 개선에 따른 북한 미사일 위협 과장론, 미사일 요격실험 실패 등도 한 요소가 되긴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정부가 예측하지 못했던 러시아 국내상황의 변화였다.

클린턴은 집권 초부터 레이건 행정부 시절 추진 내용을 축소하는 등 NMD에 미온적이었다. 태도를 바꾼 것은 1998년 공화당 주도의 의회에서 북한·이란 등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비 압력이 제기되고, 이어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 발사실험을 한 이후. 이에따라 1999년 1월에야 NMD 추진 일정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때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고어 부통령을 공화당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그는 냉전시대 군축의 근간이 돼 온 ABM(탄도탄 요격미사일) 협정을 파기할 수 없다는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때문에 NMD 역시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추진하려는 중용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러시아 상황이 변해 버렸다. 쉬운 협상 상대로 생각했던 옐친이 작년 12월 물러나고 푸틴이 집권하면서 ABM협정 수정을 통한 NMD 추진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한 것. 푸틴은 미국과의 협상을 '토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며 ABM협정 수정에 강력히 반발했다. 나아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과 미국을 갈라놓는 전술까지 동원하며 미 행정부를 압박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안보팀도 이때부터 분열상을 나타냈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샌디 버거 안보담당 보좌관, 코언 국방장관 등의 가족 이름 이니셜을 따 'ABC팀'으로 불려온 국가안보팀은 외부에는 철저하게 단합된 모습을 보여 왔었다. 그러나 이번엔 전례를 깨고 이견을 노출했다.

올브라이트는 NMD 추진 문제는 부하에게 일임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안보담당 백악관 참모들 사이에서도 반대의견이 대세를 이뤘다. 이들은 지난 7월 미사일실험이 실패하자 안도감을 보이기까지 했다. 안보팀 중에서는 코언 장관만이 NMD를 제대로 일정에 맞춰 추진할 것을 요구하며 고군분투해 왔다. 그는 유일한 공화당 출신 각료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클린턴 대통령은 실제 몇달 전에 이미 NMD 결정 연기 쪽으로 기울어졌던 것으로 주위에서는 보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