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박옥순(소설가)

뱀은 몸이 자라고 비늘이 닳게 되면 때때로 허물을 벗어줘야 한다. 그리고 새 비늘이 낡은 비늘 아래에서 형성되고 있는 동안 안전한 곳으로 피해 숨어 지낸다. 이 무렵부터는 눈꺼풀도 허물을 벗어야 하므로 눈이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새 껍질이 완성되고 나면 낡은 허물은 훌훌 벗어버린다. 눈은 그제서야 멀쩡하게 다시 쓸 수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변화를 겪게 된다. 그것은 한 단계 뛰어오르기 위한 발전의 변화일 수도 있을 것이고,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향선을 그리는 변화일 수도 있다. 그 변화의 작업이 '허물벗기'인 것이다. 그때는 우리의 시야 역시 어둠 속에 가려져 사리분별을 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흔히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고 하지 않던가. 더구나 우리는 뱀처럼 자제하며 기다리는 인내심도 부족할 뿐 아니라,그저 빨리,속전속결로 평가하고 처리해 버린다음,가슴치고 후회했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요즘 북한의 지도자상이나 실상들에 관해 너무 갑자기 후한 점수를 퍼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 쪽의 인민복이 패션으로 등장하고,그들의 사투리와 제스처들이 광고로까지 쏟아지고 있다. 그 쪽에 대한 호감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주관은 뚜렷치 않으면서 새로운 기류에 너도나도 휩쓸리는 모습은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신중을 기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구멍난 댐을 온 몸으로 막아내 나라를 구한 소년얘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도 성숙된 시각으로 사회의 흐름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자칫 놓칠 수 있는 중요한 알맹이도 건져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가라던 옛어른들의 가르침을 되새겨 볼 일이다. 조심스레 만져보되 정확하게 감지하고,감상이 아닌 이성으로 대처했으면 싶다. 그래야만 허물을 벗고 밝은 눈이 열렸을 때 기쁨 또한 몇 배로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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