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반도 화해' 세계과시 불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급작스레 미국행을 취소하고 북으로 귀환하자 정부는 북미간의 불협화가 남북 화해무드에 미치는 파장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첫 입장은 청와대 박준영 대변인의 6일 오전 논평이었다. 박 대변인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의 회담 무산이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방미 취소는 일단 우리 정부의 대북 프로그램에 막대한 차질을 던졌다. 김 위원장과 예정됐던 최고위급 회담은 김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주목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국제사회가 남북관계에 관심을 갖는 주요 계기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돌연한 방미 취소로 전략 수정은 불가피해졌다. 남북 수뇌회담을 통한 효과를 포기하는 대신 당장 북미간의 불편한 관계 해소에 중재자역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북측이 외무성 발표를 통해 미국을 강력 성토하고 나서는 바람에 북미관계 악화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북미관계 악화가 현재 어렵사리 진행중인 남북간의 긴장완화 협의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향후 군당국간 회담 관련 협의에서 북측이 미군의 군 지휘권 등을 문제삼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일 경우 우리측 입장이 난감한 처지에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통일부 관계자는 "문제가 북한의 대미관계 악화로 이어지더라도 단시간 내에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며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정부는 이번 김 위원장의 방미 취소가 항공사와의 마찰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다소 위안을 삼는 분위기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일은 정부 차원이 아니라 민간 항공사가 개입된 문제"라며 "사건을 확대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진전이나 화해 분위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정부는 김 위원장의 미국 방문 취소가 '북·미 간의 문제'로 규정했지만 그간 한·미·일 대북정책 공조가 잘 이뤄져 온 점에 비춰 북·미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다소 우려하는 시각은 있다.

한반도 문제 해결과정에서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북·미관계도 또하나의 중요한 축이 돼 왔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된 변수로 확고히 자리잡은 이상 북·미 관계로 인한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게 정부의 관측인 셈이다.

한편 북측이 김 위원장의 방미 취소와 관련해 뉴욕주재 유엔대표부를 통해 우리정부에도 사전에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담 및 만찬의 취소사실을 전해 남북 협의채널이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도 남북관계의 밝은 전망을 가능케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방미 취소를 불러온 미국측의 태도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만만찮다.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미국이 중대한 실수를 한 것만은 사실"이라며 북미관계가 상당기간 공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찌됐든 외국의 정상이 공식초청으로 입국하려는 마당에 무리하게 몸수색을 하려 했던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李相坤기자 lees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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