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불급설(駟不及舌)이란 말이 있다. 네마리의 말이 끄는 빠른 수레로도 한번 뱉어버린 말을 따라 잡지 못한다는 뜻이다. 논어의 '안연'편에 나오는 자공의 말이다. 말 한번 잘해서 천냥빚을 갚기도 하지만 자칫 말 한마디 잘못 해서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인생이다.
조지 부시 미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평소 불편한 관계인 뉴욕타임스기자가 오는 것을 보고 '더러운 ××'라고 욕을 하다 그만 마이크가 켜져 있는 바람에 들통이나 망신살이 뻗쳤다. 부시는 지난달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때 "대통령에 당선되면 품위를 지키겠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만큼 "그게 품위를 지키는 것이냐"는 비난 여론에 코가 납작해진 형편.
부시의 경우 괜히 우쭐대다 입장이 곤란해진만큼 어찌보면 애교라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이 한나라당 양분론(兩分論)을 느닷없이 6일 언급한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안간다. 아무리 집권 여당의 '실세(實勢)'의원이라지만 날치기 파동, 한빛은행 특혜대출의혹, 윤철상의원 발언파문 등 초미의 현안들은 한가지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엉뚱하게 "한나라당이 민의를 무시하고 정국 파행을 장기화 시키면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 당이 양분될 수 있다"고 야당을 자극한 것은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제 코가 석자나 빠진 처지에 남의 제사상 걱정을 하는 이런 발언은 아무리 정치적인 복선이 저변에 깔렸더라도 자칫하면 설화(舌禍)를 자초할까 걱정인 것이다.
같은날 나온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회고담은 좀더 복잡하다. 전 전대통령은 "DJ와 YS는 모두 평생 민주주의에 몸 바친 분들이어서 민주주의가 뭔가 보여줄줄 알았는데 똑 같더라"고 꼬집었다니 말한마디로 양김(兩金)씨를 겨냥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두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거액의 추징금을 체납하고 있는 '죄인'신분의 전씨가 기회만 오면 국정에 대해 한마디씩 던질 처지가 되는지…생각해볼 일 아닐까.
정치지도자의 실언(失言)은 자신을 불행하게 할 뿐 아니라 정치의 권위를 실추시킨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눌언(訥言)을 오히려 자랑스레 여겼던 것이다. 물론 요즘같은 정보화 시대에 새삼 눌언만을 강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말해야 될때 당당히 나서고 입 다물어야 될때 태산처럼 무거워야 되는 것이 '정치인의 입'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것만 같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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