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성로 좌판의 허영준(32)씨, 하루종일 손뼉 치고 고함 질러대는 그는 손님들이 무심히 지나칠 틈을 주지 않는다. 그가 사는 법은 샤라자드를 닮았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그 사람. 샤라자드는 일천일 동안 매일 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왕에게 계속한다. 그것만이 사는 길이므로.
"아줌마 아가씨! 여기 함 봐 주세요. 오십 네 가지 립스틱, 무조건 삼천 원. 원래 만 오천 원짜리가 무조건 삼천원, 돈 쓰고도 돈 버는 립스틱, 자아 골라요!"
허씨가 진짜 1만 5천원 짜리를 단돈 3천원에 파는지 기자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좌판 위에 올라선 그의 목소리에는 틀림 없이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종종걸어 지나치던 아줌마 아가씨들이 발길을 멈추고 마는 것도 그때문일 터. 립스틱에 관심이 없는 남자들 조차 그의 힘찬 목소리에 저절로 어깨를 활짝 펴지 않는가? 일단 손님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즐거울만한 이야기를 임기응변으로 늘어 놓는다. 손님의 몸짓·표정·나이를 보고 걸맞게 기분 좋은 이야기를 지어낸다.
그가 하루 10시간 이상 고함을 질러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특별히 좋을 것도, 특별히 나쁠 것도 없는 제품이라면, 일단 손님의 관심부터 끌어야 하기 때문.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까지 덩달아 관심을 보이기 마련이다. 매일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러대는 덕분에 동성로 50여개 좌판 중에선 매출도 높은 편이라고 했다.
허씨가 이러기 시작한 것은 4년 전. 건축 불경기로 10년 이상 다니던 회사에서는 더 이상 일정한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지금은 몇달째 립스틱을 팔고 있지만, 지난 4년간 50여 가지나 되는 제품을 갈아가며 팔았다. 겨울에는 호떡도 판다. 토끼도 팔고 학용품도 판다. 계절에 맞게, 날씨에 맞게, 손님 취향을 좇아 하루에 두 세 번씩 품목을 바꾸기도 한다.
그가 말하는 하루 수입은 5만원 정도. 실제는 8만원쯤 되지만 3만원 쯤은 빼야 한다고 했다. 장난기 동한 어린 아가씨들이 한 두 개씩 슬쩍 집어 가는 통에 1, 2만원은 손해로 가버리기 때문. 입술에 바르라는 립스틱을 손에 쭉 그려 보고는 그냥 가버리는 얌체 손님들 때문에 못팔게 되는 것도 생긴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허씨의 꿈은 대구에서 생활용품을 가장 싸게 파는 큰 가게를 가지는 것. 얼마 전엔 무조건 싸게 판다는 전략 때문에 경찰서에 다녀와야 했던 일도 있었다. 너무 싸서 혹시 훔친 물건 아닐까 신고됐기 때문.
우렁찬 목소리로 떠들어대던 허씨도 코 앞 가게 이야기에는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앞에서 고함 질러 미안하고 장사를 하게 해주어 고맙다고 몇 번씩 말했다. -曺斗鎭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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