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고3 수험생이 될 때까지 용돈을 아껴 저축할 수 있을까. 그렇게 10년 넘게 돼지 저금통에 모은 돈을, 읽은 책에 감동해, 남을 위해 선뜻 내놓을 수 있을까.
대구 오성고 3학년 이재승군은 추석을 이틀 앞둔 지난 10일 아버지 이명한씨와 함께 경산시 하양읍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 청구혜양원을 찾았다.
거창하지도, 요란스럽지도 않은 두 부자의 단촐한 방문이었지만 선물꾸러미는 너무나 컸다. 청구혜양원에 있는 장애인들이 겨울을 따뜻이 보낼 수 있는 내복 200벌과 추석에 먹을 송편 200인분. IMF 이후 발길이 뚝 끊긴 복지시설로서는 더없이 귀한 선물. 난방비도 모자라 허덕이는 청구혜양원에 올들어 내복을 기증한 것은 이군이 유일할 정도다.
여기에 쓰인 260만원은 이군이 초등학교 때부터 모아온 돼지 저금통 3개를 턴 것이다. 아낀 용돈 몇백원, 몇천원이 들어가기도 하고, 설날이 지나면 세뱃돈 뭉치(?)가 들어가기도 했다. 대륜중 1학년 때부터 받아온 장학금도 여기에 보탰다.
이야기를 전해듣고 학교를 찾자 담임인 이유상 교사도 전혀 알지 못한 듯 "평소 학급 실장을 맡아 과묵하면서도 모든 일에 솔선하는 줄은 알았지만…"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금통을 깬 이유를 묻자 이군은 "지난 겨울방학 때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요"라며 쑥스러워했다. 작은 힘이라도 소외된 계층을 위해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내내 해오다 추석을 앞두고 부모님과 상의한 끝에 결심하게 됐다는 것.
"대학요? 인기나 장래성보다 어떻게 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선택할래요"라며 싱긋 웃는 이군의 얼굴에는 수능시험 준비 때문에 올 겨울에나 몸으로 참된 봉사를 할 수 있으리란 아쉬움이 가득했다.
金在璥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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