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향기

꽃의 생명은 요염한 자태와 현란한 색조와 그윽한 향기에 있다. 이는 벌, 나비를 유인하기에 앞서 사람들에게 환희와 안식을 준다.

동양 사람들이 난을 좋아하는 까닭은 사군자로서의 의젓한 기품과 동양란 특유의 향기 때문이다. 녹차를 즐기는 것도 입안에서 오래도록 머무는 깊은 향취 때문일 것이다. 국향의 계절이라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코끝에서 국화의 향기가 사라진지 오래다. 일정한 개화기를 외면한 온상 재배로 가을꽃인 국화가 고유한 계절을 잃어버린 탓일까. 아니면 온갖 방향제에 만성이 된 우리의 코가 그 향기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어쨌든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왠지 모르게 감각이 둔해져 무엇에든 감응할 줄 모르는 절연체와도 같은 불구를 연출하고 있다. 그저 자기주의에 빠져 눈앞의 손익에만 극도로 예민해진 메마른 군상으로 전락하고 있다.한때 향나무 제품의 가구와 목각들이 인기를 끌더니 요사이 청소년들 사이에는 향료가 든 유리병이나 꽃주머니를 선물로 주고 받는 것이 자주 눈에 띈다. 세월이 가면 그 향기도 옅어지기 마련이지만 이는 우리의 삶의 공간을 향기롭게 하려는 무의식적인 욕구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최근에는 향기 마케팅 회사까지 생겼다고 하니 향기도 사고 파는 시대가 된 것이다.

도처에 환경 공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무엇을 해도 답답한 현실의 시공간 속을 서성이는 오늘날이기에 우리가 향기를 동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내면적 향기이다. 옷깃에 숨어 있는 향수의 냄새 보다는 우리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스며 나오는 향기가 우리 사회를 더욱 따습고 향기롭게 할 것이다. 인격과 교양의 향기, 인내와 양보의 향기, 사랑과 절제의 향기가 우리의 체내에 배어 있는가. 나의 채취를 점검할 때이다.

홍사만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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