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새 달력을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붉은 사인펜으로 제사의 음력날짜에 동그라미 치는 일이다. 양력으로 생활하는 우리가 유독 제사만큼은 음력으로 돼있어 자칫하다간 까먹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하느라 제사가 있는 날은 정말로 '등에서 콩이 튈 정도'로 마음이 바쁘다. 온전하게 남의 집 맏며느리 역할도 잘 못하고 환자보느라 허둥대는 나를 보며 마음의 갈등은 늘 있어왔다. 온 친척들이 모여 한창 준비할 시간에 병원에 앉아있는 종가집 맏며느리인 나는 마음이 정말 가시방석이다.
근무를 마치고 피곤함을 진한 커피로 달래며 시댁으로 향한다. 일가친척 모두 둘러앉아 열심히 준비하시며 "이 집 며느리 이제야 등장!"하시는 숙모님들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남은 일거리를 찾는다. "이제 다했다. 피곤할텐데 쉬어라"하시며 늦었다고 탓은 안하셔도 미안한 마음에 괜히 뒤통수가 당기는 것이다.
아버님께서는 제사는 특히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살아 생전 모시듯이 정성을 다해야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떤 노교수님은 제사 떡을 매번 시루에 손수 찌는게 어느 날 너무 번거롭게 느껴져 떡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떡시루가 마당에 내동댕이쳐지는 꿈을 꾸고는 제사를 모실 수 있는 그날까지는 시어머님께서 물려주신 떡시루에 직접 떡을 해서 제사를 모신다고 하셨다.마음과는 달리 요즘 사람들이 예전 사람들과 똑같이 제사를 잘 모시기는 어지간한 성의 아니면 정말 어렵다. 그러므로 효도는 살아계실 때 하고 제사는 직장인 며느리들도 부담없이 준비할 수 있게 혁신적(?)으로 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전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분에 대한 제사의 마음가짐은 생면부지의 조상을 제사지낼 때와는 또다른 느낌인 것 같다. 마음 속의 정성이지 꼭 차려놓은 음식의 풍성함으로 성의를 매기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서툰 주장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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